"이정미 씨, 두어 시간 정도 인턴들 강의 좀 부탁해."
인턴 과정을 수료한 대학생들의 마지막 강의를 맡아달라는 임무가 갑작스레 주어졌다. 신입 기자와 아나운서들의 교육을 담당해본 적은 많았지만 인턴 강의는 처음이었다. 즉시 방송에 투입되어야 하는 기자나 아나운서들에겐 뉴스 원고를 리딩하는 방법부터 방송카메라 앞에서의 태도 등 코치해야 할 것들이 무한하다. 하물며 같은 회사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율이나 주의해야 할 선배나 부장 뒷얘기만 해도 서너 시간은 너끈히 흘러간다. 하지만 각자 원하는 직업도 다르고, 단순히 회사를 거쳐 가는 인턴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질문이나 받고 적당히 덕담이나 해주면서 대충 두어 시간 때울 요량으로 그들을 만나러 갔다.
인턴들 역시 강의를 빙자한 '꼰대'의 설교엔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억지로 끌려와 어물쩍 시간이나 보낼 생각이겠거니 짐작했다. 하지만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한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무언의 눈빛 속엔 인생 선배에 대한 존중과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도움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 아나운서라는 직업적 특성에 대한 궁금증 등이 담겨 있었다. 긴박했던 생방송 에피소드와 나의 우여곡절 인생 경험담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들은 부러움의 눈빛으로 나를 우러러보았다. 표정에선 애절함마저 느껴졌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최근 취업 상황에 대해 물었다. "요즘 취업하기 많이 힘들죠?"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인턴들 전원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2주 후가 졸업식인데 식장에 갈 수가 없어요." 취업에 성공한 동기를 만나면 기가 죽을 것 같아서 학사모마저 포기하는 친구들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특히나 올해부터 3년간 4년제 대학 졸업생이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10년 4년제 대학 입학생은 35만 명, 2012년엔 37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청년 실업률은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예년보다 채용 규모를 줄여가고, 대학 졸업자들은 우수수 쏟아지고 있다. 빛바랜 졸업장에 꽃다발도 사치라는 썰렁한 졸업식 풍경, 우리나라 새 일꾼이 되겠다는 '졸업식 노래'가 무색하기만 하다.
"몇 달짜리, 몇 년짜리 계약 인생이 두려워요." 휴지처럼 버려지고, 휴지를 갈아치우듯 쉽게 대체된다는 '티슈 인턴', 만년 인턴만 하다가 부장 못지않은 연차가 됐다는 '부장 인턴', 영원히 인턴만 전전하는 신세라는 '호모인턴스' 등의 신조어가 서글픈 청년들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실은 이런 데 청년 실업 관련 정책과 일자리 공약들은 누굴 위한 정책인지도 모른 채 쏟아지고 있다. 이 순간에도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정치권의 외침이 들려온다. '희망 고문'도 고문이라는 이들에게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다.
"로봇과도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미래가 암울해요." '금수저', '금턴'과 경쟁해 '열정페이'만 받고도 '노오력'하며 버텨왔는데 인공지능과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탄마저 흘러나왔다. 결국 나는 이들에게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강의실을 나왔다. 가만 생각해보면 10여 년 먼저 사회에 나왔다는 것 외엔 나 역시도 여전히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마침 TV에서 화제가 된 미셸 오바마의 연설이 흘러나왔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전해본다. "청년들이여, 집중하라, 결심하라, 권리를 가지라, 희망으로 나아가고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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