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분간 무엇이든 쓰십시오. 분하고 억울하고,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요. 멈추지 말고, 지우지도 말고 나오는 대로 마음껏 쓰세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시간은 오롯이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근심 어린 학생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동그래졌다. 질문을 하고 싶으나 그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빛들이 간절하다.
거침없고 열정이 넘쳐야 할 20대인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은 온통 회색 톤이다. '3포 세대, N포 세대, 혼밥, 혼술, 혼공'을 넘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관태기'까지. 이미 청년들의 우울증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그들은 갈 곳을 잃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마음에 빈 구석이 생기면 먼저 몸이 아프다.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을 바라보고 스스로 치유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권했다.
4회에 걸쳐 반복된 수업은 몇 개의 설문만 받았을 뿐 약속대로 글은 공개하지 않았다. 안 본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림막을 친 학생도 있었고 욕을 써도 되냐는 질문도 했다. 물론 된다. 정해진 형식 같은 건 없으니까.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한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글쓰기를 거듭하면서 후련해졌고, 그때는 보지 못했던 다른 일면을 보았다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일일이 종이에 쓰고 기억의 장례식을 치러보면 어떨까. 땅속 깊이 묻든, 불로 활활 태워버리든. 태우는 것도 쓰는 것도 부담스럽다면 상상으로 찢어도 좋다. 머릿속에서 글자를 쓰고 깨끗이 지우는 작업을 하면 된다. 그러면 탈출할 수 있다. 스스로 부여잡은 기억의 옷자락을 놓고 '나는 이제 기억에서 벗어난다'고 선언하면 된다.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가끔 일기나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워담을 수 없을 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치유된다. 답답해진다면 무조건 써보자. 누가 볼까 염려되면 쓰고 찢고 삼켜버리자. 상황은 변하지 않아도, 아픔을 대면하기만 해도, 쓰는 것만으로도 반은 치유된다. 한 번 써서 후련해지는 그 선에서 타협하라.
지금 눈앞에 장애물이 보이는가. 그것이 걸림돌이 되느냐, 디딤돌이 되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눈물이다. 작가가 울지 않으면 독자도 울지 않는다. 슬퍼해라, 눈물이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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