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 '범어천 먹거리타운' ②남쪽 구간

입력 2016-12-29 04:55:03

'프랜차이즈 대박' 터뜨린 가게 많아…오후 7시 넘으면 줄서서 기다려야 됩니다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정호승(66) 시인은 지난 4월 범어천 생태공원에 들어선 자신의 시비 제막식에서 범어천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는 범어천 맑은 물에 비친 달을 마음의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가계부 여백에 연필로 시를 썼다." 이 얼마나 멋진 정경인가! 물론 50년 세월이 흘러 상당 구간이 콘크리트로 뒤덮인 범어천에서 그 옛날의 낭만을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오늘 밤도 누군가에게는 범어천을 떠올릴 추억이 되리라.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대구통닭·오징어스타·55온족발…

익숙한 상호의 본점 10여 곳 달해

김영란법 이후 술 소비 줄었지만

신메뉴·고객서비스로 치열한 경쟁

◆자연과 문학이 공존하는 힐링 공간

범어천은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지명에서 유래했다. '범어'는 한자로 뜰 범(泛), 물고기 어(魚)를 쓴다. 마을이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가 냇물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수성구 범물동 진밭골에서 발원해 두산오거리, 어린이회관을 거쳐 동신교로 이어지는 범어천은 총 12㎞ 길이의 자연하천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수성 들판 농작물의 생명줄 역할은 차츰 상실했다. 동대구로 건설, 토지구획정리, 대단위 아파트 건설 등 도시화의 여파였다.

결국 1989년 하천 복개로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으로 변모한 범어천에는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천을 통해 수성못으로 유입되는 하루 1만t의 맑은 물과 지산하수처리장의 2만3천t 처리 수가 매일 범어천으로 공급돼 각종 동식물이 살 수 있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이상화 시인의 시비가 있는 수성못 시문학거리와 범어천 정호승 시인의 길을 연계해 인문학 관광자원으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인접한 김광석 거리와도 연결해 대구 대표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구 토종 프랜차이즈 집결지

범어천 먹거리타운에는 요식업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익숙한 상호가 많다.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형 음식점·주점들이다. 하지만 본점이 많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뚜렷이 차별화된다. 이곳에서 창업하고 나서 사업성이 확인되자 다른 지역으로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대구통닭' '오징어스타' '55온족발' 등 10여 곳에 이른다.

프랜차이즈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린 가게가 유난히 많은 데 대해 예현주 범어천먹거리타운 상가번영회 회장은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고 간단히 요약했다. 스스로도 한때 20곳이 넘는 분점을 운영했다는 그는 "대구에서 가장 큰 유흥가에서 살아남으려고 업주들이 얼마나 노력했겠느냐"며 "새로운 메뉴는 물론 고객서비스까지 매일 고민한다"고 말했다.

◆외견상 호황에도 술 손님은 줄어

범어천 일대 음식점은 연중 최고 대목인 연말을 맞아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규모가 크고, 이름난 업소에는 오후 7시만 되면 빈자리가 없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줄을 서야 하는 곳이 있을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외견상 호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업주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가게의 경우 술을 많이 팔아야 이익이 증가하는데 '김영란법' 여파 탓인지 술 소비 자체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 업소 관계자는 "식사에 곁들인 반주 정도만 하고 일어서는 손님이 예년보다 늘어난 것 같다"며 "어수선한 정국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곳 상인들이 느끼는 '불경기'의 또 다른 원인은 부도심의 다양화다. 대형 먹거리타운이 몇 년 사이 대구 곳곳에 들어서면서 손님들이 각자 집 가까운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는 이야기였다. 상권 쇠락이라기보다는 신상권 등장에 따른 고객 분산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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