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마음 위해 '詩 치료' 다정한 엄마같은 의사
수줍은 소녀처럼 어깨를 움츠린 김성미(51)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 엷은 미소로 악수를 청했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목소리가 꽤 탁한 상태였다. 김 원장은 손으로 목을 감싸고 "환자와 종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에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환자와 얘기하다 보면 점심을 거르거나 진료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고 했다.
옅은 푸른 빛의 진료실 벽에는 온화한 분위기의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다. 긴장한 상태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서다. 김 원장은 "환자가 언짢아할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와 대화할 때는 되도록 환자의 눈을 바라보고, 컴퓨터 화면은 보지 않는다. 진료기록은 손으로 쓴다. "1주일에 볼펜이 두 자루씩 닳는다"며 웃는 김 원장 앞에는 환자의 진료기록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진열장에는 종이공예품과 수석 등 환자들이 준 선물이 빼곡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정신과로 이끌어
김 원장은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꿈이었다"고 했다. 대학시절에는 인문학 향기가 나는 의과생이었다. 그는 의과대에 다니며 독서토론회에 참여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다. "소설이나 연극 속의 인물을 분석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게 결국은 사람에 대한 관심, 분석과 맞물리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과를 꼭 가고 싶었어요."
그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꼭 나 자신 같다"고 했다. 조울증을 겪던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할 때마다 글을 썼다. 그 역시 글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위로한다. "제가 85학번이에요. 그때만 해도 정신건강의학과는 여의사가 할 수 없는 분야였죠."
김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시험에서 남자 선배에게 밀려 1년간 재수했다. 어렵사리 전공의에 합격했을 때도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
남다른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1998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김 원장은 그해 대구 서구 평리동에 선배가 운영하던 병원을 이어받아 개원했다. 전문의 취득 후 곧장 개원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마음과 마음'이라는 병원 이름을 지었을 때 "얌전한 이름으로 하라"는 잔소리도 들었다. 그는 '환자의 마음과 의사의 마음'을 의미하는 병원 이름을 10여 년간 고수하고 있다. "요즘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이름에 '마음'을 넣는 게 유행이에요. 제가 본의 아니게 유행을 앞서간 셈이네요. 호호."
김 원장은 "개원 후 10년간은 잘 모르고 자신감만 넘쳤다"고 회고했다. "그때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알았어요. 환자를 대할 때도 마구 설득하려 하고 제 말대로 안 따라오면 화도 내고…. 저도 힘들고 환자들도 불편했죠."
지금은 다르다. 그는 환자에게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는다. 환자를 위로하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 "저처럼 '자기 결핍'이 많은 사람이 정신과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부잣집에 태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이 환자들 이야기에 공감이 되겠어요?"
◆힘들었던 경험이 환자와 공감으로 이어져
김 원장은 '자기 결핍'에 대해 덤덤히 고백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고 했다. 바쁜 엄마와 언니는 항상 집에 없었고 매일 저녁 어두운 빈집에 혼자 들어가야 했다. 유일한 친구는 세계문학전집이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마른 풀냄새와 스산한 공기가 떠올라요. 많이 외로웠었나 봐요."
4년 전, 4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얘기를 꺼낸 김 원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편의 병간호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가장 후회돼요. 고요하게 살면 좋지만 누구의 인생이건 막을 수 없는 큰일은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김 원장의 삶의 궤적 때문일까. 유독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 환자나 불안감이 심한 말기 암 환자가 많이 찾아온다. "말기 암 환자들은 시골에서 요양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올 때마다 감을 한 아름 안고 오거나 '다음에도 원장님 만나러 올 수 있을까'라고 해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땐 정말…."
진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난 환자는 의사를 떠나지 않는다. 서울이나 울진 등 타 지역에서도 그를 찾아오는 이유다. 김 원장은 "환자가 망상에 시달리더라도 동조해준다"고 했다. 매일 병원에 전화를 걸어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온다"며 불안해하는 조현병 환자에게 "경찰이 잡아가면 내가 꼭 구하러 가줄게"라고 위로하는 식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그는 치료에도 문학을 접목했다. '시 치료'는 그의 특기다. 환자의 상황에 위로가 될 만한 시를 골라 읽어주는 식이다. 마음 한편에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은 중년 환자들에게 특히 호응이 좋다. 다정한 엄마가 돼주는 것도 치료법 중 하나다. 이해와 공감에 목마른 젊은 환자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인 환자에게 그는 "엄마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환자의 삶은 김 원장에게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는 "환자와의 상담이 지겨울 새가 없다"고 했다. "지진 났을 때 환자들이 병원으로 쫓아왔어요. 불안해서가 아니라 혹시 병원이 이사할까 봐 찾아온 거예요. 감동적이죠?"
◇김성미 원장=1966년 상주 출생. 상주여고 졸업. 계명대 의과대 졸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과마음정신과의원'학습클리닉 원장. 계명대 동산의료원 정신과 외래교수. 고려대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대한학습의학회 교육정보위원. 대구시교육청 대구독서치료연구회 자문위원. 대구여성의전화'대구여성회'대구이주여성센터 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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