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성탄절에 떠오르는 마을들

입력 2016-12-24 04:55:01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두 곳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Oberndorf)입니다. 살쯔부륵에서 북쪽으로 차로 20여 분쯤 달리면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그 마을 옆으로는 도나우강의 지류에 속하는 살짜흐(Salzach) 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는 독일의 라우펜(Lafen)이라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래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같은 동네였는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갈라진 아픔을 지니고 있는 동네라고 합니다.

1818년 12월 성탄을 앞두고 이 마을의 성당에서는 난처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당 오르간이 고장 난 것입니다. 오르간 연주 없이 성탄절을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보좌신부였던 요셉 모어 신부는 2년 전에 적어두었던 시를 들고 그 성당의 반주자였던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를 찾아가서 작곡을 부탁합니다. 1818년 12월 24일 밤,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는 오르간 대신 기타 반주로 새로운 성탄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 곡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노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캐럴이 되었고, 그 성당 자리에는 기념 경당과 박물관이 지어져 관광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이 조그마한 고요한 밤 경당(Stille Nacht Kapelle)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또한 경당에서는 각 나라말로 고요한 밤 노래를 부르며 생방송으로 세계 각국으로 중계하는 이벤트도 열리곤 합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추정되는 위치에 예수 성탄 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성당의 종탑만 없다면 요새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성당의 작은 출입구입니다. 가로 80㎝, 세로 120㎝ 정도의 조그마한 문을 통과해야만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성당의 출입구가 원래 이렇게 작았던 것은 아닙니다. 문 주위를 자세히 보면 커다란 아치 모양의 출입구 흔적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베들레헴을 점령한 사라센인들이 말을 타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서 입구를 좁고 낮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이유라면 문의 높이가 일반인의 키 정도 높이만큼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보다 훨씬 낮은 것은 다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뻣뻣한 몸을 숙이는 겸손한 자세와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권고가 되겠지요.

성탄 시기에 불리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물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셨음을 경축하는 축제일입니다. 성경 속에 전해지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열악함과 소박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산할 여관을 구하지 못해 마구간에서 아이를 출산했고, 이 아기를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들도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고요한 밤을 노래하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분쟁과 테러의 총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총성만 없을 뿐이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모르면 지도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꽁꽁 언 손에 촛불을 켠 이유는 '우리와 함께' 머무는 지도자를 원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태들을 보면 침몰하는 배 안에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치는 세월호 승무원들을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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