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민주주의 법률의 지향점은 간단히 말해 개인의 권리를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소련 등 공산국가의 법률은 이와 정반대를 지향했다. 반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혁명 국가의 규범을 철저하게 집행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이런 법체계하에서는 유죄냐 무죄냐는 법률이 아니라 그 행위가 대중이 요구하는 정의에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혁명 직후 설립된 '혁명재판소'는 이를 잘 보여준다. 혁명재판소의 권한은 막강했다. 법률이 아니라 '사건의 상황과 혁명가적 양심이 명하는바'에 따라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던 것이다. 재판관들은 이 권한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탈린이 기획한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에 대한 '숙청 재판'은 이 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부르주아 국가에서는 '법치의 사멸'이지만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는 형식적 법 논리와 결별하는 '법치의 진보'였다. 소련 검찰총장으로, 스탈린 독재 체제의 법률 이론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안드레이 비신스키는 이런 '프롤레타리아 법 논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의 형식적 명령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명령은 충돌하거나 모순될 수 있다. 이 충돌은 법의 형식적 명령이 당 정책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쿠바의 카스트로도 이런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그는 혁명 뒤 '전범'으로 기소된 바티스타 정권의 공군 병사 44명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자 TV에 나와 재판이 잘못됐다고 했다. 재판은 다시 열렸고 석방된 공군 병사는 징역 20~3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한 카스트로의 해설은 명쾌(?)했다. "혁명의 정의는 법의 명령이 아니라 도덕적 신념에 근거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법치'에 대한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했다. 탄핵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대중이 결정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반헌법적'이란 비판이 비등하자 이렇게 설명했다. "헌재가 촛불 민심 및 국민 뜻과 다르게 결정을 내려서 제도적 해결의 길이 막혀버린다면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그야말로 혁명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객관적 상황을 말한 것이다." 말을 배배 꼬았을 뿐 핵심은 역시 '혁명'이다. 이렇게 우리의 법치는 조롱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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