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채찍질하나

입력 2016-12-22 04:55:02

세상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어떤 일을 하든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견제를 받는다. 새내기 때는 선임에게, 계급이 올라 간부가 되어도 후임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직장 일이다. 자영업자 또한 별반 다르랴. 소비자들의 반응에 울고 웃는 삶을 살고 있다.

신문기자는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견제받는다. 호응과 비난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더 나은 기자로 성장한다.

필자 역시 그러했다. 초년병 시절 취재력 부족으로 부실한 기사를 데스크에 냈다가 중간 단계의 선배에게 호되게 질타당한 적이 있다. 게이트키핑 과정의 1단계인 선배를 거쳐야 하는데 어쩌다 바로 낸 게 화근이었다. 그때는 잘 썼다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후일 되돌아보니 형편없는 원고였음을 알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문에 나온 기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독자로부터 최종 검증받는다. 독자의 평가는 잔인할 때가 있다. 미담 기사나 깊이 있는 시리즈로 칭찬받을 때도 있지만,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하지만 거센 비판을 받은 오보는 머리 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최악의 사고는 사회부 기자 시절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사를 피의자로 바꿔치기한 일이다. 바쁘게 기사를 작성하다 피의자의 이름을 검사 실명으로 잘못 쓴 게 그대로 신문에 실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다행이었는지 아량 넘치는 검사를 만나 '고침' 기사로 조용하게 넘어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울 때 브라질의 우승 횟수를 오보 낸 것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월드컵 참가 팀들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브라질이 통산 3차례 우승했다고 쓴 게 문제였다. 이때까지 브라질은 1958'1962'1970'1994년 등 통산 4차례 정상에 올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까지 포함하면 브라질은 통산 5회로 역대 최다 우승국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오보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이메일을 통해 워낙 거센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맞느냐', '진작 기자 그만둬라'는 등 별의별 욕을 다 먹었다. 나뿐만 아니라 신문사까지 먹칠해 너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브라질이 통산 4번째 우승한 1994년 미국 대회를 필자는 직접 미국에서 현장 취재했다. 그러기에 실수를 한 게 더 자존심 상하게 했다.

최근의 두 가지 일도 필자를 채찍질한다. 한 통의 메일과 전화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스포츠를 공부하는 서울 소재 대학의 한 학생이 '최고의 중계방송은 침묵'이란 지난번 데스크 칼럼에 대해 장문의 의견을 보내왔다.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면서 정중하게 진로 등을 자문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진정성에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인의 칼럼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이를 참고해 공부하고 사색해 자신의 논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답을 보냈다.

최근 시리즈로 실린 '대구 엘리트 체육 이대로 끝나나'에 대한 대구시 공무원의 전화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온 그는 수화기 너머로 술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대구시의 반응이 왜 없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산 등 여러 구조에서 대구 체육계에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는데, 그는 17개 시'도 순위에서 3년 연속 13위에 머문 대구의 전국체전 성적을 그냥 받아들이는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다. 국민과의 소통에 담을 쌓은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당했다. 주위로부터 견제받지 않은 탓이다. 견제받으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은 '독불장군'이 스스로 만든 일이다. 대통령 곁에서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아첨하거나 시키는 대로 일을 한 이들도 줄줄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제 와 대통령도 측근도 자기 잘못이 아니란다.

현재의 위치에서 주위를 둘러보자. 채찍질하는 사람이 누구냐. 당장 기분 나쁘고 불편하더라도 채찍질하는 사람을 가까이해라. 큰 욕을 먹지 않고 사고를 치지 않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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