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러시아 교수의 잃어버린 금붙이

입력 2016-12-20 04:55:05

경북대(석사)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지갑·노트북 잃어버려도 금방 찾아

방한 러시아 교수 "이것이 한국" 감탄

돈'권력 제멋대로 쓴 대통령 스캔들

"러시아도 아닌데" 한국 신뢰 무너져

몇 해 전 교환교수로 오신 러시아 교수님이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샛노래져서 나를 찾아왔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 안에 지갑을 두고 내린 것 같단다. 버스에 떨어뜨렸으면 별문제 없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일단 안심시켰다. 무엇이 얼마나 들었느냐고 물으니 난감한 얼굴로 대답한다. 얼마간의 돈과 평생 모은 금붙이가 들었단다. 부모님이 유산으로 남긴 반지며 목걸이, 결혼 패물 등등. 2년은 한국에 있어야 하니 그걸 조그마한 주머니에 꽁꽁 싸매서 넣어 왔단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갔더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주웠다며 지갑을 내민다. 그런데 수백달러의 돈도 신분증도 그대로 들어 있는데 금붙이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직원에 운전기사까지 가세해서 버스 좌석 틈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실망한 교수님을 위로하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CCTV도 돌려보자며 귀가했는데, 몇 시간 후 그분이 내게 오더니 미안하단다. 핸드백의 찢어진 안감 틈새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던 금붙이 주머니를 발견했다고 말이다. 좀 덜렁대던 성격의 그 교수님은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었다. 커피숍 의자에 핸드백을 두고 나오기도 하고, 식당 신발장 위에 지갑을 얹어두고 잊어버린 적도 있다. 서울 학회를 갔다가 지하철 선반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그냥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나절 후 다시 가도 핸드백은 그 자리에 있었고, 지갑은 식당 주인이 보관하다 돌려줬으며, 노트북은 유실물 센터에서 되찾았다. 세계 각국에서 생활해 봤지만 이런 나라는 처음이라고, 그녀는 놀랍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디다 뭘 두고 오거나 잃어버려도 천하태평이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이것이 한국이다"고 말이다.

작년 여름 고국으로 돌아간 그 교수님을 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만났다. 카페에서 가방을 옆자리나 의자 등받이에 걸어둘라치면 제대로 안고 있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두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한다. 실제로 당시 인솔했던 한 여학생이 휴대전화를 도난당했을 때 경찰서에 함께 가주기도 했다. 결국 학생의 휴대전화는 찾지 못했고 경찰서에선 도난신고서 한 장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잃어버린 휴대전화와 러시아 경찰의 관료주의적 일 처리에 그분이 난감하고 미안해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이것이 러시아다"고 그 교수님은 우리보다 더 분개했다.

그런데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신뢰는 이번 대통령 관련 스캔들로 깨진 듯하다. 한국은 그토록 안전하고 조직화된 나라이며, 한국 국민들은 정말로 정직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도둑질'과 무질서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한국인도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보지 못했단다. 그런데 국가 지도층이 어떻게 국민의 돈과 권력을 제멋대로 쓰고 법을 어기느냐고, '러시아'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는 말에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 국민들의 신뢰도는 아마도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왜 국민과 정치인, 위정자의 수준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청문회에 불려나온 이른바 높으신 분들과 재벌들이 자기 직무에 얼마나 무지한지, 얼마나 돈과 권력을 남용했는지, 뇌물을 주고받는 걸 얼마나 당연히 여기는지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매일 만나는 우리 주변 사람들 중에 저 정도의 파렴치한들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그런데 정말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은 왜 "그놈이 그놈이다"고 자조하면서 자신보다 형편없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는 것일까?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요즘처럼 이 말이 아프게 다가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최소한 우리 국민의 수준 정도는 되는 지도자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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