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20기만큼의 에너지, 6.5km 땅속 깊이 잠자고 있다"
① 전력 자급자족 최적지 울릉도
② 電 뿜는 화산섬, 지열발전 메카로
③ 세계 첫 대규모 친환경에너지 자립섬의 꿈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보름 정도만 일찍 오셨더라도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
5일 국내 첫 지열발전소 공사가 한창인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 시추공사를 담당하는 넥스지오 최재원 이사가 말했다.
이곳 현장엔 가로'세로 10여m, 높이 60여m 규모의 거대한 시추 장비가 세워져 있다. 현장을 방문하기 전, 시추 장비 아래 땅속에서 연신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예상과 달리 현장은 조용했고 시추 장비는 멈춰 있었다. 최 이사는 "지열발전을 위해선 지하 4㎞ 깊이까지 이어지는 시추공이 2곳 필요한데 2번째 시추공도 이미 목표 지점까지 도달한 상태"라며 "지금은 한쪽으로 물을 주입해 지하에 물길을 만들고 있는데, 이르면 이달 중 뜨겁게 데워진 물을 지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추 장비가 멈춘 것은 '국내 첫 지열발전 성공'이란 목표에 그만큼 바짝 다가섰다는 의미였다.
◆지열발전 첨단기술 EGS
1904년 이탈리아의 라데렐로 지역에서 지열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구에 불을 밝히며 시작된 지열발전은 화산지대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화산지대는 뜨거운 화산성 지열원이 지표 근처까지 올라와 있어 지하 1~2㎞ 정도만 시추해도 150℃가 넘는 뜨거운 지열 증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열발전은 땅속에 뜨거운 열원이 있어야 하고 이 열을 지상으로 운반하는 매개체인 지열유체, 지열유체가 저장된 저류구조가 필요하다. 석유 개발과 마찬가지로 지열 또한 지하자원의 일종이어서 종종 개발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저류구조가 없거나 작아서 지열유체를 충분히 생산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산지대가 아닌 곳에서도 지열발전이 가능해졌다. '인공 저류층 생성기술'(EGS) 때문이다.
EGS는 원하는 온도에 이를 때까지 땅속 깊이 시추공을 뚫고 강한 수압으로 물을 주입해 암석을 깨뜨려 인공적으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인 저류층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렇게 만든 저류층에 물을 집어넣어 가열되면 다시 끌어 올린 뒤 발전소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EGS를 이용하면 현재 전통적 방법으로 개발할 경우 절반 가까이 실패하는 지열발전 성공률도 높일 수 있고, 기존 지열발전소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
국내 적용도 가능하다. 한반도는 지하 4~5㎞의 평균온도가 150도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지하 5㎞ 깊이에서는 최대 180도의 온도를 보인다. 현재 기술로 시추가 가능한 지하 6.5㎞까지 개발한다고 가정할 경우 약 20GW의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에너지가 땅속 깊이 잠자고 있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예측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20기에 해당하는 막대한 에너지다.
EGS를 활용한 지열발전은 아직 초기 단계다. 세계적으로도 상용화에 들어간 발전시설도 네댓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업계는 2020년 이후 EGS 지열발전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넥스지오 최재원 이사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12.6GW인 세계 지열발전 규모가 2050년까지 200GW로 급성장하고, 이 가운데 EGS 지열발전이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지열발전 막 올라
포항지열발전소도 EGS를 이용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1단계로 올 연말까지 1.2㎿급 실증사업을 마무리하고 2단계로 내년 말까지 설비용량 5㎿를 추가로 증설해 2018년 상업운전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성공하면 한국은 아시아권에선 처음으로 EGS를 이용한 지열발전소를 갖게 된다. 이렇게 들어서게 되는 6.2㎿급 설비는 인근 4천여 가구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이다.
EGS 공정은 우선 파이프 형태의 드릴을 이용해 열원에 도달할 때까지 2개의 시추공을 뚫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시추공 중 하나는 주입정, 다른 하나는 생산정이다. 주입정과 생산정은 인공적으로 만든 저류층으로 연결된다. 포항지열발전소는 현재 인공 저류층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설비용량을 증설하는 2단계는 기존 주입정 옆에 생산정 한 곳만 추가로 뚫은 뒤 인공 저류층을 만들어 기존 주입정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기존 주입정을 활용하면 공사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당초 국내 첫 지열발전소가 포항에 들어선 것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사전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균적으로 땅속 1㎞씩 내려갈 때마다 온도가 약 25.1도씩 증가한다. 이를 지온증가율이라고 하는데 포항은 1㎞당 40도가 넘는 지온증가율을 보였다. 이처럼 지온증가율이 높은 지역은 얕은 곳에서 높은 온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지열발전 최적지는 울릉도
화산섬 울릉도는 지열발전의 최적지다.
울릉도 친환경에너지 자립섬 사업을 담당하는 울릉에너피아에 따르면 최근 울릉도를 구조 탐사한 결과 땅속 온도가 국내 평균보다 최고 4배 높았다. 울릉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4곳을 탐사한 결과 땅속 1㎞에서 63.5~99.2도의 고온 지열 자원이 확인됐고 국내 평균 25도보다 월등히 우수해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2011년부터 올해까지 넥스지오와 전력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용역을 줘 나온 결과다.
울릉에너피아는 이 같은 결과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했던 핵심 설비인 연료전지를 빼고 지열을 4㎿에서 12㎿로 3배 늘려 주력 에너지원으로 삼은 것이다.
지열은 장점이 많은 에너지원이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비가 오면 가동을 멈추는 풍력, 태양광 등과 달리 24시간 발전이 가능한 데다 환경오염 물질 배출이 거의 없다. 지상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고 유지보수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경제성도 높다.
반면 발전 설비를 갖추기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다. 굴착 작업엔 리스크도 있다. 굴착용 드릴이 고장 나거나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생긴다. 땅속을 들여다보며 굴착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파악에 시간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울릉에너피아 관계자는 "울릉도는 땅속 온도가 월등히 높아 육지의 절반 정도만 굴착해도 적정 온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제성은 충분하다. 향후 울릉도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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