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마트? 음악이 기억나면 클래식 애호가!
대구백화점 본점을 지나 중앙도서관 방향으로 가다 보면 2'28기념중앙공원에 인접한 낡은 건물 3층 '하이마트'라는 상호에 시선이 꽂힌다.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곳인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 이곳은 반세기를 훌쩍 넘는 세월 대구시민들에게 있어 정서의 자양분이자 클래식 음악의 고향인 고전음악감상실이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청춘을 이곳에 묻은 할머니 DJ 김순희(70) 씨를 만났다.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김 씨는 '하이마트'(Heimat)가 독일어로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첫인사를 했다. 아버지의 지인이셨던 한 서울대 교수가 이름을 지어줬다는데, 상호의 의미가 절묘했다.
손님들이 앉아 따뜻한 차 한잔 곁들이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널찍한 감상실을 지나니 7㎡ 남짓한 전축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LP와 CD, 그리고 연주 실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수천 개가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LP 음반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고 있을 즈음, 김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라면서, "지금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음반들"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어렵게 구한 LP 음반에 뽀뽀를 하며 품에 소중히 안고 계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렇게 자식처럼 귀하게 아끼던 LP 음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요."
하이마트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57년, 내년이면 꼭 60주년을 맞는다. 당시엔 구 대구극장 맞은편 건물 2층에 둥지를 틀었다가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에서 사업을 했던 김 씨의 아버지 김수억(1969년 작고) 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LP 음반을 가득 싣고 대구로 피란을 왔다. 상당한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미군 부대와 미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클래식 음반을 하나씩 사 모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수천 장의 음반을 가지고 고향인 천 리 길 서울로 돌아갈 일이 막막해 그냥 대구에 눌러앉아 음악감상실을 열었다고 했다. "이불로 음반을 꽁꽁 싸매고 트럭에 싣고 가려고도 생각했지만, 당시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부서질 위험이 컸어요. 아버지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을 LP 음반 때문에 포기하셨지요."
그 때문에 하이마트는 대구시민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됐다. 전쟁으로 피폐한 시절, 문화에 굶주린 대구시민들이 하루 400여 명 넘게 찾아왔다고 했다. 김 씨는 "아버지는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먹먹한 전후 세상, 사람들은 문화에 굶주렸고 하이마트는 그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됐지요"라고 미소 지었다.
아버지의 가업을 딸이 이어받은 사연이 궁금했다. "1969년 5월 26일 당뇨를 앓던 아버지가 입원했어요. 응급실 병상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감상실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때 어머니는 '돈 안 되고 바깥출입도 못하는 일, 일어나서 당신이 계속 하소'라고 했어요."
눈을 지그시 감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던 김 씨는 "그때 제가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내가 맡아서 할 테니 아빠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요'라고 말했다"면서 "아버지 근심을 덜어 드리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 날 돌아가셨다"고 회상했다. 대학 졸업 후 임용시험에 합격해 학교 출근이 예정돼 있었던 김 씨였지만 결국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로 했다.
그때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김 씨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평생 가장 잘한 일이 아버지 말을 따른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이마트는 현재 김 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등 아버지'딸'외손자가 3대(代)를 이어가고 있다. 김 씨의 아들 박수원 씨는 이곳 감상실에서 고전음악 선율을 자장가로 듣고 자랐다. 그래서 영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박 씨는 음악에 대한 동경을 버릴 수 없어 어머니의 만류를 무릅쓰고 1999년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나 7년을 보내고 귀국했다. 하이마트가 50번째 생일을 맞던 지난 2007년 아들은 '50주년 기념 음악 감상회'를 열고 어머니를 대신했다.
아들에게 음악감상실을 맡겼지만 여전히 김 씨는 하이마트에 매일 나온다. 김 씨는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양식과도 같은데, 요즘 찾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 안타깝다. 지금처럼 힘든 사회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음악으로 마음을 달랬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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