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淸白吏)의 청렴도를 가르는 기준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것이 있다. 재임 중에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묶은 것이다. 우선 사불(四不)이란 부업을 가져서는 안 되고, 땅을 사서도 안 되고, 집을 늘려서도 안 되고, 그 고을의 명물을 먹어서도 안 됨을 이른다. 그리고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해야 하며, 청을 들어준 다음 답례를 거절해야 하고, 경조애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를 삼거(三拒)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소설 속의 캐릭터를 만든 적이 있다. 여고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이미지를 빌려 왔는데, 이름도 선생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전 호조판서 김석형은 치밀하고 수리에 밝은 이였다. 재화와 경제에 관한 정무를 맡아보는 중앙관청의 수장을 지낸 인물다웠다. 그렇다고 그 기질과 재능을 사사로운 축재에 들어 쓰는 법이 없고, 언행이 두루 맑아 청백리로 천거되기도 했는데, 청렴도 전 항목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면 사람이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것이 자연스럽겠으나, 김석형은 정이 많은 이였다. 하여 지방관으로 재직했던 향리의 아전들이 꿋꿋한 존경심으로 아직도 오고가며 알은척을 해오고 있었다.
김석형이 지금이야 남촌 사람이지만, 현직 판서로 있을 때는 아무래도 궐에서 가까운 북촌에서 살기는 했다. 순화방 백악산 아래 단칸집을 빌려서였는데, 사는 모양새가 얼마나 초라했으면 주변의 인사들이 비우당 같다고 해서 '여비우당'(如庇雨堂)이라고 하기도 했다. 비우당은 세종조의 대표적인 청백리 유관(柳寬)의 집으로, 집 안에까지 비가 새서 우산을 쓰고 있을 정도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퇴임 후 북달재 근방으로 옮겨와 눌러앉게 된 집칸도 헛가리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겨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단칸집이지만, 나는 이 안에서 구백구십구 칸이나 되는 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 말이 돌면서 '허백당'(虛白堂)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걸 천 칸짜리 고대광실로 오해하고 구경온 이들이나, 명성만 듣고 인사치레로 찾아온 이들이 간혹 집을 놓치고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 인물을 만드는 동안 머릿속으로 그린 것은 '어른'이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그러면서도 그것이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아주 자연스러운 '어른' 말이다. 그러면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소원했다. 비록 내 인간관계가 턱없이 좁아 비루한 채 산대도 들킬 일이 거의 없을 거라지만, 그것은 나이를 먹는 데 대한 책임감이자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어른'의 '이응'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넘어가려나 보다. 소득 없는 시간들이 아깝다. 설마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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