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자살할 것이다. 이 가정이 가장 그럴 듯하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월터 랑거 박사가 1943년에 한 예측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193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신 분석을 연구한 랑거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전략사무국(OSS)으로부터 아돌프 히틀러의 정신 분석을 의뢰받는다. OSS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이다.
그는 1941년부터 히틀러와 관계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자료를 검토하고 수많은 증언자를 직접 면담했다. 히틀러의 가족과 성장 배경, 성격과 사생활, 심리 상태 등 분야별로 분석한 비밀 보고서를 완성해 1944년 초 OSS에 전달했다. '자살 예측'도 종전 후 30년간 극비 문서로 분류돼 공개가 금지된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실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했다.
히틀러 연구서 중 이만큼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드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히틀러를 제대로 분석해낸 랑거는 1972년 이를 책으로 엮어내면서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런 연구가 몇 년 일찍 여유 있게, 직접 정보를 얻을 기회가 많을 때 이뤄졌다면 뮌헨 조약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스탈린 연구가 이뤄졌다면 얄타 회담을 다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카스트로를 연구했다면 쿠바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다. 결과론에 기대어 지난 역사를 꿰어맞추고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더라도 랑거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훗날 역사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인물에 대해 샅샅이 연구하고 검증하는 작업은 곧 역사를 쓰는 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의 '박근혜'를 우리가 깊이 있게 연구하고 분석했더라면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겪은 이런 형태의 고통과 질곡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자연인이라면 모르겠지만 국회의원'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 공인의 자리에 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랑거가 한 것처럼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철저히 검증하고 공인으로서의 자질을 따졌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비극을 불렀다.
오늘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한다. 탄핵 결과와 상관없이 이 시대와 국가적인 불행이자 우리 헌정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일이다. 탄핵 정국은 '바른 역사는 순간의 선풍(旋風)이 아니라 지루하고도 어려운 토대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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