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마지막 공주

입력 2016-12-01 04:55:01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의 한 장면이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溥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일제에 협력한 혐의로 수감됐다. 감옥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온 내시가 여전히 신발 끈을 매줬다.

"이제 운동화 끈 정도는 혼자서 매요. 아직도 당신이 황제인 줄 압니까?" 같은 수감자 신세였던 내시가 참다못해 푸이에게 쓴소리를 했다. 푸이는 가만히 운동화를 내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신발 끈 매는 걸 배워본 적이 없어…."

평생 남에게 떠받들려 살아왔기에 혼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내시나 신하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푸이는 말년에 어쩔 수 없이 정원사 일을 했지만, 그리 행복한 여생을 보내지는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은 '공주'다. 평생 공주처럼 떠받들려 살았고 힘든 일을 해본 적도 없다. 청소년기와 20대를 청와대에서 보냈으니, 내심 자신을 공주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최순실마저 "자신을 공주로 아나 봐"라고 뒷담화를 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봉건시대 궁중생활만큼이나 폐쇄적이고 권위적이었다. 박 대통령 주변에는 깐깐한 관료나 고지식한 정치인이 발붙일 곳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공주처럼 명령하는데 익숙했기에 복종하고 굽실대는 신하만 필요했다. 대통령 자신의 콤플렉스와 권위 의식이 더해진 잘못된 리더십을 자기만의 신념이나 원칙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내시(內侍) 아닌 내시'만 들끓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 '문고리 3인방', 최순실 자매, 새누리당 친박계 등은 오로지 내시 역할에 충실했다. 내시의 속성이 '윗분'을 극진히 모시고 비위를 맞춰주고는, 결국에는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일이다. 내시는 자신의 주관이나 소신이 있으면 자격 상실이다. 그간 청와대 주변에 칙칙하고 음모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여성 특유의 은밀함 쯤으로 여겼더니만, 그 실체가 내시들에게서 뿜어나오는 요사함과 간교함일 줄은 몰랐다. 왕조시대에나 볼 수 있던 장면을 오늘날에 재현했으니 정말 끔찍하다.

박 정권은 후세에 '내시정권'으로 길이 기억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박 대통령은 퇴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촛불 정서를 볼 때 더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이 출현하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한 시대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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