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으뜸 의사] 박영춘 박영춘신경과내과의원 원장

입력 2016-11-30 04:55:02

"의사는 병의 근본을 치료해줘야죠"

1935년 영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경북대 의과대 졸업. 경북대 내과 전문의 수료. 뉴욕주립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수료. 전 계명대 동산의료원 내과
1935년 영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경북대 의과대 졸업. 경북대 내과 전문의 수료. 뉴욕주립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수료. 전 계명대 동산의료원 내과'신경과 과장. 전 계명대 동산병원장. 전 계명대 동산의료원장. 계명대 뇌연구소 초대소장. 박영춘신경과내과의원 원장. 전 대한신경과학회 회장. 전 아세아태평양신경과학회 명예회장. 전 미국'세계신경학회 정회원. 전 국제두통학회 정회원. 전 대한노인의학회'대한노인신경의학회 고문

"의사는 계속 공부해야 해. 늙으면 제자한테라도 배워야지."

박영춘(82) 박영춘신경과내과의원 원장에게 '배움'은 곧 즐거움이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한 달에 많게는 10차례씩 심포지엄에 참석해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 "이젠 어딜 가도 녹슨 고물 취급당해. 허허." 박 원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박 원장의 스마트폰 활용도는 여느 20대 청년에 뒤지지 않는다. 채팅 앱으로 외국에 사는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 앱으로 심포지엄 일정을 확인한다. 은행 업무와 열차표 예매도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박 원장의 스마트폰에는 이따금 채팅 알림음이 울렸다.

박 원장은 "인생에 특별한 것이 없다"는 말을 거듭했다.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평생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술'담배를 멀리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환자를 가족같이 여기자'는 기본도 내려놓지 않았다. "젊은 시절 내 마음속 정년이 80세였는데, 이렇게 정년을 훌쩍 넘길 수 있을지 몰랐어."

◆신경과 후진 양성의 꿈을 이루다

박 원장은 '신경과 1세대'로 불린다. "우스갯소리로 '대구 시내 신경과 전문의는 전부 박 원장의 제자'라고들 하는데 영 틀린 말은 아니지." 그가 1961년 경북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를 마칠 당시만 해도 '신경과'는 진료과목이 아니었다. 내과를 찾는 환자 중 상당수가 신경과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신경학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신경과와 관련된 질환이 수백 개가 넘어도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는 '먼저 배워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꿈을 안고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에서는 신경과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가 '열심히 배워서 의료기술 전파에 이바지하겠다' 하니 기특했던가 봐."

그는 4년 만에 계명대 동산병원 내과과장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과였지만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환자는 모두 신경과 환자였다. "당시 신경학을 공부한 의사가 전국에 10명이나 됐을까요? 그러니 환자들이 몰릴 수밖에."

그는 후진 양성의 꿈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1982년 대한신경과학회를 창립했다. 이후 1985년 동산병원 진료과목에 신경과가 생기면서 과장을 맡았다. "동산병원에서 배운 제자들이 경북대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신경과를 만들었어요. 드디어 꿈을 이룬 거지."

박 원장은 1990년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동산병원장과 동산의료원장, 계명대 대학원장, 뇌연구소 초대 소장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특히 1994~1996년 의료원장을 하면서 종합검진센터를 열고, 의료행위를 위한 모든 시스템의 전산화를 마쳤다. 그는 "밖으로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일들"이라며 손사래쳤다. "난 그저 내 분야에서 목표를 이뤘다는 데 만족해요. 요즘 젊은이들도 그런 보람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50년 넘은 단골환자도 있어

박 원장은 기본에 충실하다. 그의 병원에는 진료실 두 곳 외에도 신경기능검사실과 임상병리검사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내과 진료 장비는 물론, 신경과 진료에 필요한 근전도검사기와 뇌파검사기. 경동맥도플러검사기, 골밀도검사기, 뇌혈류검사기 등 고가의 장비도 갖췄다. 박 원장은 "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수적인 검사 장비를 갖추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박 원장은 기침을 하며 들어오는 70대 여성 환자를 보자마자 "아직도 손 많이 떨어요?"라고 물었다. 손떨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여성은 이날 감기증세를 호소했다. 환자가 "폐 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우기자 박 원장은 "약을 한 번 먹어보고 안 나으면 찍어보자"며 타일렀다. 박 원장은 "환자의 얼굴을 보면 환자의 병을 떠올릴 수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찾은 단골 환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심지어 50여 년 전, 그가 동산병원 내과 과장을 할 때 만난 단골환자도 있다.

그는 "의사는 병의 증상만 고치지 말고 병의 근본을 치료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환자에게 "뜨겁고 맵고 짜게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이유다. 특히 요즘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장 질환으로 찾아온 환자를 문진해보면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일쑤예요. 우리나라도 이만하면 잘사니까 이제 좀 느긋하게 살 필요가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회사나 사회에서 시달리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참 너무해."

박 원장은 서서히 의사로서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다. '이 정도 했으면 오래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년쯤에는 후배나 제자에게 병원을 물려줄 생각이다. "그래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기자분이 찾아왔네. 유종의 미를 거둔다고 생각하지 뭐. 와줘서 고마워요." 박 원장이 따뜻한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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