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두 가지의 됫박

입력 2016-11-26 04:55:05

여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쳤을 때나 훌륭한 건축물을 보았을 때도 그러한 경우에 속하겠지요?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을 말하라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정 성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3년간 설계와 건축에 정열을 쏟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천재성에도 감탄하지만 그가 죽고 나서도 그의 의도대로 지금도 건축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소도시의 공업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기계과를 다녔던 저는 기계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제도라는 과목도 공부했고, 그 도면을 가지고 쇠를 깎는 기계를 이용하여 제품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기계제도(Mechanical drawing)란 기계공업 분야의 기계제작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설계자의 요구 사항을 제작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선과 문자 및 기호 등을 사용하여 간단명료하게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제작자에게 설계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도면을 정확하게 그려야 합니다. 완성될 제품을 여러 각도에서 본 모양을 도면으로 만들어 냅니다. 정면에서 본 정면도, 위에서 본 평면도, 옆에서 본 (좌우)측면도, 필요에 따라서는 아래에서 본 배면도, 어느 한 위치를 절개한 단면도 등, 제품이 복잡할수록 도면은 많아집니다.

한편,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이 도면을 정확히 읽어내야 합니다. 여러 선과 문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도면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제품 형상을 유추해 내고 그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제품을 잘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도면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도면 판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과물은 오작(誤作)이 되어 폐기되고 맙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잘하기 위하여 매순간 판단을 합니다.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옳은 판단과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판단은 더 어려워집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 측면을 그 인간의 전체인 양 착각을 합니다. 인간을 제품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같은 사람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정면도를 보고, 어떤 사람은 평면도를 보고, 어떤 사람은 측면도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빛의 방향과 높이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물보다 사람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판단의 대상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서 시골 장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시골 장터엔 곡물장수들이 많습니다. 곡물장수들은 곡물을 사들이기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요즈음이야 무게로 곡물을 사고팔지만 예전에는 됫박을 이용했습니다. 사고파는 모습을 눈여겨보면 곡물장수들의 됫박은 두 가지입니다. 사들일 때 사용하는 됫박과 팔 때 사용하는 됫박이 다릅니다. 둘 다 겉에는 2L라고 찍혀 있지만, 곡물을 판매할 때에는 새 됫박을 사용하고 사들일 때에는 헌 됫박을 사용합니다. 더구나 곡물장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수매용 됫박 안쪽을 사포로 문지른다고 합니다. 왜 사포질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지요.

곡물장수의 눈에 보이는 꼼수와 그걸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시골 농부들이 어우러지는 추억의 시골 장터의 모습 속에서 두 가지의 됫박은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중략)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오 복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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