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몸

입력 2016-11-25 04:55:02

가장 정직한 것이 내 몸이라는 생각을 한다. 코흘리개 시절 어머니께서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몸 아끼는 인간하고는 상종하면 안 돼"라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어머니가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큰 기준이었던 것이, 나이가 들수록 나의 기준도 돼 가는 것이 참 신기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하신 말의 뜻은 뭘까?

요즘 내가 부쩍 감사하는 것은 무용계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무용가야말로 자기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예술가 아닌가? 어머니 말처럼 제 몸 안 아끼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을 보면, 이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어찌 헤쳐나갈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금전적으로 넉넉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또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지위를 누리는 사람도 많지 않다. 물론 그중에는 몸도 부지런하지만, 머리도 바빠서 금전적으로 넉넉하고 명성도 누리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오직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버럭 화는 낼지언정 뒤끝이 없고, 미사여구로 사람을 휘어잡지는 못할지언정 온몸으로 나를 감동시킨다. 지난달에 있었던 일이다. 젊은 시절부터 봐 온 한 후배가 마음에 쌓아뒀던 회한들을 쏟아낸다. 나이가 들고 보니 좀 더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고를 수도 있었는데 무용하느라 그 계산을 못하고 살았다는 넋두리다. 내가 봐도 그렇다. 이 후배는 얼굴은 물론이고, 무용으로 다져진 몸매 또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마음씨조차 반듯해서 내가 늘 마음에 담아두는 후배다.

이 후배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물려줄 것이 없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런 후배에게 내가 해준 말은 딱 한마디였다. "네가 요새 몸을 좀 덜 놀려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이 말에 후배는 조금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랬던 후배가 며칠 전 찾아와 "그 말이 정답"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는 하루에 10시간은 서서 재단을 하고 옷감 손질을 한다. 고되다. 하지만 자부하는 것이 있다. 누구보다도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것이다. 이 일 말고도 다른 세상살이 속에서 찾아오는 스트레스들은 내 몸을 부지런히 놀릴 때 '싹' 가시는 것을 늘 체험한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정신을 다스리는 순간순간을 절감하며 산다.

나는 확신한다. 모든 작업은 내 몸을 움직인 만큼 성과가 난다고. 요즘 한창 복잡하고 혼미스럽기까지 한 정치판 동네 사람들에게도 이 초겨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면서 정답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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