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朴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한다면

입력 2016-11-24 04:55:05

청와대가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자신을 조사케 하는 특검법안에 서명했다. 23일엔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사표를 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박근혜 게이트'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은 박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참' 불행한 사태다. 적어도 이건 아니기에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한국호(號)는 '최태민-최순실-박근혜'라는 암초를 만나 수백 명의 목숨을 삼킨 세월호처럼 좌초됐다. 죽음을 코앞에 둔 세월호 속 단원고 학생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위기 상황' 이 아니라 '길 없음'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애국심이 뼛속까지 배어 있다고, 사심이 없다고, 국민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 최소한의 윤리를 좌초시켰다.

배가 좌초돼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두고 고대 그리스 선원들은 아포리아(Aporia)라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아포리아 상태다. 고대 그리스에도 3차례의 아포리아가 있었다. 페르시아 침공, 동족끼리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고 소크라테스 죽음 등으로 대표된다.

기원전 492년, 초강대국 페르시아제국이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의 첫 번째 아포리아였다. 병력이나 무기나 자원이 페르시아 침공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는 밀티아데스라는 위대한 리더의 지휘 하에 마라톤 전투에서 기적의 승리를 한다. 그리스의 두 번째 아포리아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 전쟁에선 페리클레스가 뛰어난 식견을 갖추고 민중과 소통하는 리더십,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며 도시국가 동맹인 그리스 방패가 됐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어떤 나라이든, 조직이든 흥하고 망하는 이유는 다 사람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세 번째 그리스의 아포리아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었다. 그리스인들 스스로 철학을 죽였다는 수치와 후회를 몰고 오며 당대의 지성사회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종국에는 이상과 철학, 윤리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됐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의 아포리아를 두고 고비마다 역사를 바꾼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조명했다. 크세노폰, 투키디데스 등 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리더십은 지도자는 정의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는 것과 세월의 변화를 적시하고, 군주다움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이었다. 또 개인의 의지가 아닌 법에 의거한 정의의 실현, 평등한 기회 제공과 공정한 보상의 보장, 상황에 따른 전략의 신속한 변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솔선수범이었다.

박 대통령의 좌초는 '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 비롯됐다. 궁극적으로는 역사가 준 교훈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본래부터 국정 철학과 리더십 토대가 없었기에 최순실 씨와 사적 거래를 통한 권력 사유화, 최 씨의 딸 정유라 씨를 둘러싼 불공정과 특혜, 국민행복을 위한 소통보다는 독단적'교조적 통치에 기댄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또다시 말한다. "한 인간이 강대해지면 분수를 잊고 오만에 빠져 민심에 의해 집행되는 네메시스(벌, 보복)를 받은 뒤, 야욕은 좌절되고 자신은 파멸한다"고.

고대 그리스처럼 대한민국도 아포리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거리의 촛불을 손가락질하는 대신 그 손가락을 자신에게 향해야 한다. 이어 좌초된 배에서 노젓기를 시도하는 대신 노를 잠시 내려놓고 거대한 촛불을 봐야 한다. 이후 대한민국의 갈 길이 어디인지를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민을 시험하지 않으면, 국민과 싸우지 않으면, 내일은 찬란한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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