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11월 14일, 이미 5년 전 대원군의 내정개혁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던 면암 최익현은 또 계유상소를 올렸다. 대원군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 이 상소는 고종의 뜻과도 일치해 대원군의 10년 세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면암은 아니다 싶으면 끊임없이 상소를 올렸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됐을 때는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며 도끼와 상소를 들고 광화문에 나타났고, 고종의 단발령 때는 "40년 군신의 의리는 여기서 끝났다"고 당당히 외치며 흑산도 유배길을 떠났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에 체포되어 쓰시마섬에 끌려갔을 때는 "왜놈의 흙은 밟지 않겠다"며 부산 초량의 흙을 버선 바닥에 깔고 단식으로 저항하다 1906년 말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는 "실로 만고에 얻기 어려운 고금 제일의 우리 선생"이라 했고, 중국의 위안스카이는 "굴원과 개자추를 합친 절의"라고 면암 선생에게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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