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이다.
수능을 위해 잠 줄여가며 공부한 수험생이나 가족들 모두에게 이날 하루는 중요한 날이다. 수능 결과가 곧 학벌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삶이 녹록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무시하지 못할 조건이다. '청년 실업'이 보통명사가 된 요즘, 학벌의 의미가 예전에 비해 퇴색됐지만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중요하다.
유치원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고, 학교가 끝난 뒤 학원을 떠돌고, 자녀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엄마들이 일자리에 나서야 하는 모든 이유가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한 것이다. 이날 수능 결과는 초'중'고 12년 교육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능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파묻힌 정국 혼란도 원인이지만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대학 부정 입학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고3 교사들은 수능을 앞두고 터진 부정 입학 비리에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수험생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열린 '하야 집회'에 100만 명의 국민들이 몰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정 집안의 국정 농단에 놀아난 대통령과 권력 집단에 대한 분노와 이런 사회에 살 수밖에 없는 좌절이 함께 녹아난 결과다.
20~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종종 현실로 나타났다.
종업원으로 근무하거나 허드레 장사로 시작해 큰 기업을 만들거나 어렵게 공부한 뒤 자수성가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쉽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성공한 이들은 고향 누구 집 아들이거나 촌수를 따지기 쉽지 않지만 먼 친인척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성공담은 이제 '신화'가 되고 있다. 빈부 격차가 뚜렷해지면서 일반 서민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현재의 삶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 층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고, 중년층은 불어난 가계 빚에, 노년층은 늘어난 평균 수명만큼 남은 삶을 지탱할 돈 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또한 이런 우울한 현실의 지표 중 하나다.
미래도 만만치 않다. 우울한 경제 상황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일자리는 줄고 있고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내수 또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영향으로 성장과 소비의 주체인 20~40대 인구 비율이 해마다 줄고 있는 상황도 미래를 어둡게 하는 지표다.
촛불집회에 뛰쳐나온 국민들의 심정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미래가 불안하고 하루 삶이 힘든 판에 어처구니없는 '국정 농단'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비호 아래 자녀를 부정 입학시키고 대기업 총수를 불러 수십억원의 돈을 받고, 고위 공직자 인사까지 개입한 정황에 대해 허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집회에 나온 국민들의 속내는 단순히 '대통령 하야'뿐 아니다.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경고이면서 심해지는 빈부 격차에 대한 항의다. 또 '공정한 사회', '노력하고 성실한 이들이 잘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자는 바람이 녹아 있다.
궁금하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과연 사회에 변화와 희망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어찌 보면 '대통령 박근혜'는 우리 정치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지만 기존 정치권에 대해서도 별다른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고 권력형 부패의 본거지라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하야를 거부해도 어차피 내년엔 대선이 있다. 과연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새로운 정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쉽지는 않지만 촛불집회의 염원이 정치권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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