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한가운데 직사각형 바위에 '요새 같은 궁전'
밀림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 위에 지은 궁전 시기리야. 5세기경 카사파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에 오른 뒤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지은 요새 같은 궁전이다.
대형 바다거북이 해안가에서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있다.
스리랑카는 인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눈망울 모양을 한 섬나라다. 한반도의 약 3분의 1 면적에 열대몬순기후로 우리나라에서는 실론티란 홍차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 또는 인종에 대하여 배타적인 나라와 우호적인 나라가 있는데 스리랑카는 한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환경은 인도와 비슷하지만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라오스처럼 정겹고 편안하다. 특히 길게 이어진 해안선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유럽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인기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 높은 산맥과 밀림이 혼재해 있어 장소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심하므로 두툼한 외투 한 벌 정도는 챙겨 가는 것이 좋다.
밤늦게 네곰보의 반다라나이케 공항에 도착했다. 네곰보는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의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이번 여행은 기간이 짧아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바람에 시간을 아끼고자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한 비자와 함께 간단히 입국 수속을 하고 바로 내륙의 캔디로 향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 프리랜서 라빈드라에게 부탁해 둔 덕분에 공항서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야밤에 캔디로 가는 길은 험한 데다 비까지 내렸다. 차는 마치 돌 위를 통통 튕기는 것 같았고, 가끔 머리가 천장까지 치솟았다 곤두박질쳤다. 거의 4시간이 지나 파김치가 됐을 무렵 캔디에 도착했다. 조수석 창가에 둔 휴대폰 액정에 금이 가 있었다.
다음 날 마치 두들겨 맞은 듯이 찌뿌듯한 몸을 억지로 이불 속에서 빼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캔디호수가 하얀 안개 속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 새벽 풍경에 갑자기 온몸이 빠르게 푸른색으로 충전되는 느낌이다.
서둘러 시기리야로 출발했다. 시기리야는 밀림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 위에 지은 궁전으로 히스토리는 여느 다른 유적지와 비슷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후환이 두려워 지은 요새 같은 궁전이다.
필자도 전 세계 많은 유적지를 보았지만 시기리야만큼 독특한 곳은 처음이다. 밀림 한가운데 거대한 직사각형의 바위가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꼭대기에 바위를 깎아 궁전과 밭, 저수지를 만들어 수백 명이 기거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상에서 탁 트이게 바라보는 평원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당시 공사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의 원성은 아마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올라가는 중간 암벽에 1천500년 전 그린 미인도는 일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한다.
다음 날 스리랑카 남부 최대 항구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인 갈레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구시가지인 갈레포트는 바다로 돌출된 조그만 반도 같은 형태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이다. 수백 년 전 지은 성 안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동서양이 합쳐진 건축 기법으로 유명하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현지인들은 골이라 발음을 하는데 갈레포트는 기차로 가든 버스로 가든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구시가지 가장 높은 성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며 관광객들에게 팁을 받는 긴 머리카락의 바짝 마른 남자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를 기억할 리 없는 남자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미화 20달러만 주면 자기가 뛰어내리겠다면서 사진 촬영도 허락해 준다고 한다. 순간 씹던 껌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 나름 경력이 쌓인 여행가라고 자부해왔지만 얼굴은 멍청하기 그지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양인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중국 관광객들이 서양 관광객 수를 넘는다. 새벽에 일어나 상큼한 공기를 가르며 성벽 위를 한 바퀴 가볍게 조깅하면서 시작하는 일정은 여행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갈레 바로 밑에 위치한 우나와투나해변으로 갔다. 베트남 다낭의 해변처럼 넓고 길면서 고운 모래를 가지지도 못했고, 필리핀 보라카이처럼 예쁜 해변은 아니지만, 이 해변은 아름다운 미소로 유혹하는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멋진 스쿠버 다이빙 포인트가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다이빙숍으로 가서 오랜만에 물맛을 보기로 했다. 반갑게 맞는 직원은 대화를 스페인어로 할 건지 영어로 할 건지 묻는다. 순간 한국어로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이를 지켜보던 독일 손님이 자기는 독일어로 했다면서 큰 덩치답지 않게 펭귄이 양팔을 추켜세우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먼저 소유한 자격증 레벨과 다이빙 횟수를 묻는다. 필자는 국내서 꽤 오래전부터 다이빙을 해 왔었다. 다이버마스터 자격증과 500여 회 경력이 있다고 하니 직원이 힐끗 쳐다보고서는 슈트와 장비를 던져주고 가버린다. 장비를 조립하고 배에 올라탔다. 10여 명 되는 다이버들은 모두가 다국적이다. 보트로 20여 분 이동한 곳에 몸을 던졌다. 맑고 깨끗한 바닷속의 시야는 거의 무한대이다. 20여m의 수심을 타면서 펼쳐지는 높고 낮은 계곡은 태백산맥의 능선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산호초와 형형색색의 물고기 등을 사진에 담아 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이빙은 성공적이었다.
모처럼 하루 에너지를 거의 소모한 뒤 허기진 배를 채우러 현지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에는 입 안으로 넣을 '장비'가 없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냥 손으로 먹으라면서 식당 구석진 곳에 있는 조그만 세면대를 가리킨다. 손으로 밀어 넣는 흩날리는 밥알의 반은 손 밖으로 삐져나온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으로 나오니 태양이 땅에 떨어지려고 한다. 해변 중간 야자수 두 그루 사이에 지은 조그만 레스토랑에는 창문이 없다. 테이블을 어슴푸레 밝히는 촛불은 빨간 드레스를 입은 발레리나다. 얇게 자른 레몬을 띄운 진토닉 한 잔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혼자만의 황홀한 고독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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