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제왕'으로 불리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이지만 얼마 전 한국에서 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도밍고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뜨거운 반응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관객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좋은 공연은 좋은 관객이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무대와 객석이 서로 잘 소통될 때 공연의 감동이 커지는 법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최근 오페라 '토스카'를 들고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찾았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함께하면서, 만약 도밍고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크게 감동받았을 것으로 확신했다. 이날 대구 오페라 관객들이 보여준 호응이야말로 보기 드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토스카'에서 테너 김재형이 절절한 호소력으로 부른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이 끝나자 관객들은 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지휘자 리신차오의 자연스러운 리드에 그는 다시 그 노래를 불러 관객의 성원에 화답했다.
국립오페라단이 야심 차게 제작한 수준 높은 공연과 대구 오페라 관객들의 뜨거운 열정, 그리고 14년 내공의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기획력이 한데 어울려 빚어낸 감동의 순간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2005년 빈국립극장 '사랑의 묘약' 무대에서 벌어졌다. 멕시코가 낳은 명 테너 롤란도 비얀손이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부르자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그는 네모리노의 살아있는 현신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이 아리아를 앙코르로 불러 관객들의 환호에 화답했던 것이다.
매년 가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찾을 때마다 대구 관객들의 남다른 오페라 사랑과 열정에 놀란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의 서양음악 도입 초기에, 그리고 6'25전쟁 이후에 대구에서 활발하게 음악활동이 벌어졌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무엇보다 음악교육의 전통이 깊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계명대, 영남대, 경북대, 대구가톨릭대 등 각 대학의 예술대학에서 배출된 예술인들이 대구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형성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성공을 이끌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페라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부러운 도시가 바로 대구이다. 비록 열성적인 오페라 팬이 아니더라도, 매년 열리는 오페라축제를 맞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수준 높은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대구시민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국립오페라단 '토스카'를 비롯해 '라보엠' '카르멘', 독일 본극장 초청 '피델리오', 오스트리아 린츠극장 합작 발레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살롱오페라 '오이디푸스왕' 등 기획력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극장 안의 열기는 물론이거니와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미니콘서트, 오페라 의상'분장 체험 프로그램, 오페라 강좌 등 다양한 부대행사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호응 역시 뜨겁다. 이제는 누구라도 '대구'하면 자연스럽게 '오페라의 도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오페라의 허브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대구 시민들과 함께 쌓아온 오페라의 토양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탄탄하게 다져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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