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급성호흡부전 앓는 변을선 씨

입력 2016-11-15 04:55:05

24시간 써야 할 산소호흡기, 돈 없어 못할 판

천식과 급성호흡부전으로 24시간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는 변을선(79) 씨.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천식과 급성호흡부전으로 24시간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는 변을선(79) 씨.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나이를 묻는 질문에 변을선(79) 씨는 한참동안 머뭇거렸다. "죽을 날만 바라고 사는 사람이 나이를 기억해서 뭐해." 을선 씨는 2주 전 천식과 급성호흡부전이 심해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숨이 차고 속이 메스꺼울 뿐만 아니라 정신이 혼미해 말하고 걷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산소호흡기를 쓰지 않은 탓이었다. 몇 달 전 숨이 차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24시간 산소호흡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한두 달 쓰다 대여료가 부담스러워 되돌려보냈다고 했다. "산소호흡기 대여료가 한 달에 10만원이야. 그거 빌려 쓸 돈이 어딨어."

산소호흡기를 끼고서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가는 을선 씨는 병상에 홀로 누워 시간을 보낸다. 집 나간 양아들이 데려다 놓은 손자(22), 손녀(17)가 유일한 가족이지만 손자는 군대에 갔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손녀는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다. "애가 어려 철이 없어 그렇지, 어디 속마음이 그렇겠어." 을선 씨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봤다.

◆양아들 행패에 스스로 세상 뜬 남편

영천에서 태어난 을선 씨는 열일곱 살에 결혼을 했다. 1년 만에 낳은 딸은 첫 돌을 지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모 심으러 가려고 여동생에게 애를 맡겼는데, 동생이 애를 업고 산에 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왔지 뭐야. 애가 밤새 열이 펄펄 나고 앓더니 다음 날 세상을 떴어." 을선 씨는 자궁에 이상이 생겨 불임 진단을 받자 아들을 입양했다. "자식 없이 살려니 남들한테 설움을 많이 받았어. 자식이 있어야 늙어서 힘이 되지 싶어 아들을 입양했는데 그놈이 너무 못된 사람이 됐어."

자라면서 아들은 비행을 일삼았고 성인이 돼서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집 나간 아들은 가끔 찾아와 을선 씨와 남편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아들의 행패를 참지 못한 남편은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농약을 마셨다. "술을 좋아하던 양반이었는데 아들과 크게 한바탕하고는 속상했는지…."

그 후 아들은 발길을 끊었다. 아들이 집을 찾은 것은 단 두 번이다. 손자와 손녀를 맡기러 온 것이다. 아들은 결혼했지만 며느리는 폭력과 외도를 견디지 못해 떠나버렸고, 아들은 한 살배기 손자를 을선 씨에게 떠안겼다. 그 후 전국을 떠돌며 일용직 노동을 하던 아들은 10여 년 뒤 여섯 살 난 손녀까지 데려다 놨다.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실패한 것이었다.

◆환갑에 떠안은 손자…먹여 살리려 폐지 줍다 쓰러져

"내가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리려고 안 해본 일이 없어." 환갑이 다 돼 젖먹이 손자와 손녀를 품에 안은 을선 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워낙에 가진 게 없어 몸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다 늙어서 '노가다' 판에 뛰어들었어. 집 짓는 곳에는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가끔 벽돌도 지고 그랬지." 결국 힘에 부쳐 공사판을 떠났고, 노점에서 국화빵을 굽고 점포를 얻어 우동을 팔았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폐지 줍는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다녀도 1만원을 겨우 벌었어. 그래도 애들 반찬은 사먹일 수 있으니까…."

4년 전 을선 씨는 폐지를 줍다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그 후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 누워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꾸려야 하지만 2년 전 손자가 취직하면서 절반인 50만원으로 줄었다. "집세 내고 끼니 해결하기도 모자라. 당장 내야 할 병원비 100만원이 없어." 앞으로 24시간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는 을선 씨는 매달 내야 하는 호흡기 대여료도 부담이다.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을선 씨는 인터뷰가 끝나자 기자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와줘서 감사합니다." 눈물 맺힌 눈을 바닥으로 떨군 을선 씨는 혼잣말처럼 "내 팔자가 사나운 걸 누구를 탓하겠노"라고 읊조렸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을선 씨의 눈물이 반짝였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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