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n in the Wind)을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 언론 기고 칼럼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내정자는 "문학의 형식 논리를 파괴한 노벨문학상의 결정이 놀라웠다"고 평가했다. 그 역시 형식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행정학 강의를 하며 소설과 영화를 부교재로 써 이런저런 말이 나왔지만 꿋꿋이 자기 방식을 고수했으니 말이다.
기자는 최근 6개월간 2주에 한 번 그를 만났다. 본지 인터뷰 코너인 '김병준 대담'과 관련, 인터뷰 현장에 동행해 녹취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나에겐 틀을 깬 사람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이른바 높은 사람들의 꼿꼿함과 권위적인 태도를 자주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실장, 교육부총리까지 지낸 김 내정자도 내 기준에서는 '높은 사람'이었다. 몇 달 전 건양대에서 인터뷰가 잡혔을 때 실수로 김 내정자를 논산캠퍼스로 안내해버렸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인터뷰 장소는 대전캠퍼스인데 말이다. 두 곳의 거리는 35㎞, 네이버 길찾기는 40분을 예상했지만 그는 20분 만에 빛의 속도로 대전에 날아왔다. 혼날 각오를 하고 있는데 "허허. 속도위반 딱지 여러 장 날아오겠구먼, 들어갑시다" 하고 나를 쳐다보며 껄껄 웃었다. 누구처럼 잘못을 채근하는 레이저 빔도 쏘지 않았다. 높은 사람에 대한 편견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김 내정자는 올해 5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혁신위원장직을 제안했을 때 고사한 적이 있다. '허수아비 위원장'이 되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리 욕심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집권 여당의 혁신위원장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권한 없는 개혁은 실패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올해 봄, 새누리당 초선의원 당선자 총회 강사로 나선 김 내정자가 우리나라 국정을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하고, 전 지도부에도 작정하고 쓴소리를 해 몇몇 의원들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국정이 마비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한 눈물의 호소가 진심으로 비치는 이유다.
김 내정자의 임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민심을 무시한 절차다. 거리의 촛불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데, 국민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총리를 내정했다.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갖고 국가를 이끌 총리직 제안을 받았을 때 개혁을 바랐던 김 내정자의 판단도 흔들렸을 것이다. 문학가들의 거센 비판에도 틀을 깬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노래에 감동 받은 대중들의 지지 때문이다.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한 대통령의 앞뒤 바뀐 총리 인준으로 우리는 아까운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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