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알/박복조 지음/서정시학 펴냄
중견시인 박복조 씨가 4번째 시집 '말의 알'을 펴냈다. 박 시인은 6년 만에 새 시집을 냈을 뿐만 아니라, 지난 5년 가까이 문단(文壇)에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문학과 대학원에 다녔어요. 석사는 학위를 받았고, 박사는 과정을 수료했어요. 이왕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박사논문까지 쓸 생각입니다."
박 시인은 일주일에 2, 3일 등교했을 뿐인데, 문인들과 교류할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고 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라 젊은 사람들에게 창피당하지 않으려니 두문불출 공부만 해도 따라가기 힘들었단다. 하긴 62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 2012년에 대학원에 진학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박 시인은 경북여고 시절 시, 단편소설, 수필을 쓰며 문예반에서 활동할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하지만 진학하고 싶었던 국어국문학과 대신 부모님 권유로 약학대학에 진학했고, 그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 '말의 알'은 6년 동안 쓴 작품 62편을 묶은 것이다. 3번째 시집 '빛을 그리다'가 약국을 운영하던 시절 만났던 '남루한 삶'의 모습을 담아냈듯 이번 시집에서도 '사람살이의 진한 애환'을 담고 있다.
박 시인은 젊은 시절 자식 넷을 낳아 기르며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약국 문을 열고 영업했다. 약국의 특성상 여러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휘청거리는 사람들, 삶의 무게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슬퍼했고, 피로해 했고, 외로워했다. 각막에 또렷하게 기억된 그 삶은 눈을 수없이 감고 떠도 지워지지 않았고, 종내는 시상(詩想)이 되어 돌아왔다.
'영등포 역사, 새벽 두시가 넘었는데 불이 훤하다/ 그 남자,/ 의자처럼 누워 있다/ 누군가 가지고 놀던 곰 인형 의자에 버려져 있다/ 그 남자처럼 버려져 있다/ (중략) 기차 지나가는 소리/ 남자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세상 바닥에 버려진 곰' -곰 인형- 중에서.
"아이들 넷 키우며 약국 운영하던 시절에는 너무 바빴어요. 마음은 시에 가 있었지만 몸은 생활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공무원이던 남편이 1979년 서울로 발령 나면서 대구의 약국을 접었어요. 그때부터 조금 시간이 났기에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하고, 시를 썼어요. 예술원에서 성춘복 선생님께 시를 배웠는데, 2년 남짓 지나니까 선생님이 '이제 등단해도 되겠다' 하시며 쓴 작품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문예지가 아니라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세월은 시인의 편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경북 군위, 선산, 점촌, 김천으로 발령 났다. 자리를 잡나 싶으면 발령, 발령이 잇따랐고, 아이들을 매번 전학시킬 수도 없어서 남편이 있는 지방과 자식들이 있는 서울을 오가며 집을 챙겨야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신춘문예는 멀어져갔다. 신춘문예로 등단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마음껏 시를 쓰지 못했다는 원망 때문일까.
"하루 종일 시만 생각합니다. 남편 챙기고 아이들 돌보던 세월에서 벗어나 시로 내 주변에 벽을 세우고 싶어요. 사벽(四壁)을 시로 채우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만 보이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박복조의 시편 바닥에는 사물과 현상을 강렬하게 잡아채는 첨예한 사유와 감각의 흐름이 있다. 그녀는 사물과 현상의 고유하고도 역동적인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선명한 물질적 언어로 바꾸어 간다. 그 안에는 아득한 심연에서 전해져오는 어떤 미적 파동이 담겨 있는데, 시인은 그것을 아름답게 채록해간다. (중략)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심층에서 글썽이는 심미적 서정에 근접하려는 성정(性情)을 보여준다"고 말한다.137쪽, 9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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