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신사를 다시 만나면 뭐라 말씀하실 건가요?"
매일춘추 첫 칼럼에서 10여 년 전 기차에서 만났던 노신사에게 당당히 손녀를 무용인으로 지원하시라고 답한 나에 대해 다시 질문해오는 지인이 많다. 솔직히 면전에서 바로 묻는 그 질문은 당혹스럽고, 난감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 당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다시 "그 질문을 선생님이 받았다면 어떻게 말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중 부부가 무용을 전공하며, 한 명뿐인 딸도 무용수로 키우고 지금도 무용인들의 스태프로 활동하시는 분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요?"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함축하고 있는 이 말로 미진한 우리의 대화는 일단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주일쯤 지났을 때 대학 신입생이 그 글을 읽었다며 지금 선생님은 어떻게 답하실 건가요 하고 또 물어온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 라고 똑 부러지게 답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한 답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 가보지 않고 미리 걱정부터 하지 말고 가보고 싶다면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얼버무리며 일등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왜 나는 이런 대답 정도밖에 할 수 없을까? 불문학을 전공한 나는 무용수로 활동하던 친언니의 코디네이터를 하다가 당시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지방의 무용복 세계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당시에는 맞춤복은 점점 사라지고 기성복이 급속한 유행으로 번졌고, 대부분의 의상실이 문을 닫고 있던 터인데도 나는 그때 시작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옷 만드는 것 외엔 별다른 재주나 취미도 없던 나는 부나 명예로는 남과 비교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그 길을 택한 것이었다. 모자란 지식은 현장과 대학원 진학 등으로 채워나가면 되지 하는 자신감 또한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후배들에게 무용이라는 예술세계와 인연을 맺고 평생 자신을 바쳐보라는 말을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싶기도 해서 며칠간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무용의 세계는 내가 시작하던 그 시절보다도 확실히 더 어려운 환경임에 틀림없었다. 보다 나은 직업군이 많이 생겨난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용에 대한 사회의 관심 또한 줄어든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또 다른 시각에서 무용을 바라볼 때, 이런 상황들은 우리 무용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좀 더 스산해지는 느낌이다.
후학들에게 무용을 당당히 권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10년쯤 후에는 그려 볼 수 있을까? 쑥스럽지만 거울 앞에 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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