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왕의 길'을 걸으며

입력 2016-11-10 04:55:02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걷기코스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 올가을 경주에서는 월성지구~도당산~남산을 연결하는 '왕의 길'이 새롭게 완공되었다. 코스 주위에는 최치원 영정을 모신 상서장과 오릉, 국립경주박물관, 나정, 양산재 등 문화유적이 많이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난 5일에는 이곳에서 매일신문 주최로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함께 걷는 경주 왕의 길' 행사도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왕의 길을 걸으며 청명한 가을을 맘껏 누렸다. 그러나 '왕의 길'이라는 테마로 걷다 보니 최순실과 그 일가 및 측근들의 국정 농단 사태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이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한다.

삼국유사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신라 35대 경문왕은 임금이 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왕비 외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왕의 복두쟁이는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그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다가 죽을 때에 이르러 도림사 대밭으로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라고 소리쳤다. 그 뒤부터는 바람이 불면 대밭으로부터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 왕은 이것을 싫어하여 대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으나 그 소리는 여전하였다고 한다. 대통령 곁에서 충언을 하던 사람들을 모두 '참, 나쁜 사람'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다 내쳐버리고 나서, 국민들로부터 '하야' '탄핵' 소리를 듣는 오늘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에 대한 충고나 비판은 듣기 싫은가보다. 그리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권력이나 이권 앞에는 영원한 우군도 없다. 경문왕처럼 듣기 싫다고 대를 베어 버려도 비밀이나 여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몸도 피가 잘 소통되어야 건강하지 않은가? 아픈 충언(忠言)을 리더는 잘 들어야 조직에 활기가 흐른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충언을 받아들여 조직 발전에 노력했던 리더도 아쉬웠고, 각자의 직분과 임무에 충실한 구성원도 부족했던 것 같다. 다들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고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 것 같아 복지부동하는 모습만 보인다.

우리는 말 잘하고 권위적인 리더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는 현명한 리더가 필요하다. 모든 중생의 아픔을 들어주던 부처님의 큰 귀처럼 빈부, 지역, 남녀, 세대, 남북 간의 대립과 고충에 귀 기울여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주고 풀어주는 리더들의 노력이 절실할 때가 아닌가 한다.

왕의 길을 걷다 보면 화백광장을 만난다. 그 옛날에도 소통을 통해 의견을 모으지 않았던가? 우리는 왕의 길을 걸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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