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고] 용학도서관 '현대 시 창작반'

입력 2016-11-08 04:55:01

詩想 불태우느라, 냄비도 태워 먹었죠

대구 용학도서관
대구 용학도서관 '현대 시 창작반' 회원들이 김기연(맨 오른쪽) 시인 앞에서 자작시를 읽으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부터 전수분·한순임·김광숙·서정호·이영배·김영희(이영배 씨 뒤쪽)·전종옥·조옥순·김형윤 회원.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친구따라·도서관에 왔다가…

우연찮게 詩 세계에 입문

매주 한 편씩 발표 품평회

문학상 휩쓸며 막강 내공

문단서도 주목하는 동아리

"욕심없이 일단 시작하세요

인생이 곧 詩, 소재는 많아"

요즘 시집(詩集)이 다시 인기다. '짧은 문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적합해서'라는 출판계의 해석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시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시는 인류의 모국어'라는 어느 독일 시인의 표현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굳이 누군가가 SNS로 퍼날라 주지 않으면 어떠랴. 쓰고, 또 고쳐 쓰면서 스스로 힐링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단이 주목하는 시 창작 동아리

대구 수성구 범물동 용학도서관 4층. 10여 명의 '예비 시인'들이 각자 써온 시를 돌려 읽으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2013년 시작한 '현대 시 창작' 수업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에 '현대 시 이해와 감상'(기초반), 수요일에 '시 창작'(심화반) 수업이 진행된다.

특히 심화반 회원 중에서 매주 목요일 1편의 자작시를 의무적으로 발표·품평하는 연구반 회원들은 내로라하는 글솜씨를 뽐낸다. 전수분(76)·김광숙(66) 씨는 매일신문 주최 '매일시니어문학상'을 각각 지난해와 올해 받았다. 김형윤(57) 씨는 지난해 'DGB대구은행 여성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김영희(52) 씨는 2014년 창주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언론인 출신인 서정호(77) 씨는 라디오 드라마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등 회원 모두가 막강한 내공을 자랑한다. 이들을 지도하는 김기연(52) 시인은 "취미 이상의 실력을 갖춘 분이 많아 문단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동아리"라며 "매년 자체 동인지도 발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상에 빠져 냄비 태운 일도 부지기수

회원들이 소싯적부터 문학 소년·소녀였을 것이란 선입견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시를 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영배(63) 씨는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친구가 정년퇴임하면서 시집을 낸 걸 보고 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서정호 씨는 "등단 같은 거창한 목표보다 나이 들어서도 말을 간결하게 해보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주부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에 책 읽으러 왔다가 우연히 참여했다는 김광숙 씨는 "시인들과 정서적 교감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한순임(79) 씨는 "수필 공부를 5년째 해왔는데 어느 날 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놓았다.

시에 푹 빠져 살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전종옥(59) 씨는 "시어 선택에 골몰하다가 태워버린 냄비가 몇 개나 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조옥순(61) 씨는 "남편이 시집 낼 돈을 마련해 놓았다며 격려하는데 정작 시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김영희 씨는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함께 시집을 읽거나 습작을 해 대견하다"고 했고, 김광숙 씨는 "남편이 같이 안 놀아준다고 요즘 불평이 크다"며 웃었다.

◆"겁내지 말고 일단 시작하세요"

시를 쓰면서 삶이 따뜻해졌다는 회원들은 한목소리로 시 공부를 권했다. 시인을 꿈꾸는 어르신들에게는 "처음부터 큰 욕심 내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꾸준한 독서와 좋은 지도자'동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배 씨는 "시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억지로 지어내는 게 아니라 진솔하게 쓰면 된다"고 했다. 전수분 씨는 "인생 경험이 곧 시"라고 맞장구쳤다. 또 김광숙 씨가 "시를 쓰는 게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거들자 서정호 씨는 "시를 쓰면 영혼이 맑아진다"고 화답했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정신의 여행인 시 쓰기는 마음이 기뻐지는 일"(조옥순 씨),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좋은 취미"(전종옥 씨)라는 의견도 있었다.

회원들은 매일신문이 지난해부터 열고 있는 시니어문학상처럼 어르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했다. 김기연 시인은 "시니어들도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꿈을 꿀 수 있게끔 도와드려야 한다"고 했다. 서정호 씨는 "고령화시대 노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노년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일거리"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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