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수상(隨想)] 오후 인생 즐겁게 살기

입력 2016-11-01 04:55:02

어느 신문사에서 중산층의 요건을 설문조사했다. 대개는 30평형대 이상 아파트 소유에 2천㏄급 자가용이 있고 월수입 500만원 이상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고, 현금 1억원쯤 통장에 잔고가 있어야 중산층이라 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질을 기준으로 삼는 데 비해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는 거기다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답을 하고 있다.

무언가 배우고 싶긴 한데, 다 저문 인생에 쉽게 배울 악기가 뭐 있겠느냐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하모니카를 권하고 싶다. 하모니카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다른 악기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색소폰이나 아코디언 등 다른 악기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지만 하모니카는 국산으로 4만원대부터 비싸야 15만원 정도다.

둘째, 크기가 작아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등산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도 휴대가 간편하다.

셋째, 배우기가 쉽다. 하모니카 악보는 숫자 보로 세계 공통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도는 1, 레는 2, 미는 3, 이렇게 순차적이다. 불고 마시고 불고 마시고 하는데 도는 불고 레는 마시고 미는 불면 된다. 하모니카는 크기는 작지만, 음량이 풍부해 혼자 하는 오케스트라다. 하모니카를 불면 귀를 통해 소리가 뇌로 전달되어 만족감을 느끼고 정서가 편안해진다. 하모니카는 향수를 불러오는 악기다. 하모니카를 불면 마음이 어릴 때로 돌아가서 그때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해 마음이 안정된다.

나는 퇴직을 하고 하모니카를 배웠다. 젊은 시절 제멋대로 불던 하모니카를 대구 노인복지관 하모니카 교실에 등록해서 체계적으로 배웠다. 3년을 배우고 마음 맞는 이들과 하모니카 동호회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금빛 하모니카 봉사단이다. 회원 중에는 어릴 때 동네 오빠가 불던 하모니카 소리가 잊히지 않아 배운다는 할머니도 있고 초등학교 교사를 한 분도 있고 자영업을 했던 분도 있어 직업군이 다양하다.

악보 없이도 열 곡 정도 이상을 불 수 있는 남녀 20여 명을 규합했다. 수업 후 따로 모여 스터디도 하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2013년 대구광역시 실버경연대회에서 우리 동아리가 금상을 받았다. 취미를 같이 나누며 함께 늙어 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행운이다. 지금은 요양병원 경로당 복지회관 등에서 재능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단원 모두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 한다.

실버들이여, 늦다고 생각 들 때가 가장 이르다고 합니다. 하모니카를 배웁시다. 가을밤에 듣는 하모니카 소리는 참 좋습니다. 달이라도 휘영청 뜨면 그 소리는 더욱 좋습니다. 그것이 오후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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