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다시 쥔 연필, 공부는 감동이었다
아이는 다시 '교과서'를 볼 수 없었다. 어려운 시골 살림에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소녀는 학교를 포기해야 했다. 이후의 삶은 이 시대 60대 보통의 어머니들이 걸어왔던 삶과 비슷하다. 고난, 신산(辛酸), 희생 같은 정서들이 함께했다. 그로부터 50년 후 백발이 된 소녀는 다시 교과서를 잡았다. 이번엔 어느 야간학교의 검정고시 준비반이었다. 반세기 만에 다시 쥔 연필, 그에게 공부는 희열이자 감동이었다. 책을 든 손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평생 한이었던 졸업장을 위해 시작한 공부였는데 하다 보니 초'중'고교 졸업장까지 모두 따버렸다. 그것도 1년여 만에.
이제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50년 전 그의 '사전'에는 없던 단어였다. '만학 소녀'의 극적인 인생 반전, 이정순(63) 씨의 늦깎이 열공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언니와 찾은 야간학교, 배움의 시작
10대부터 일찍 생활전선에 나왔던 이 씨. 일찍 한복 재단에 뛰어들어 30대에 자신의 점포를 가지게 되었다.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다시 자녀 양육, 살림, 가게 운영으로 바쁜 삶들이 이어졌다.
그에게 배움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언니를 야간학교에 소개시켜 주러 갔다가 자신도 같이 입학을 한 것이다. 50년 만에 다시 잡은 책, 교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이 씨에겐 꿈이었다. 학업에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기왕 공부를 시작한 김에 졸업장을 하나 따보자고 각오를 했어요. 전 초교 중퇴였거든요."
이런 열정 덕에 이 씨는 1년 만에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내친김에 그는 중등반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중'고교 졸업장에도 욕심이 생겼다.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서도 3개월 만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중등과정 합격에 기뻐할 겨를도 없이 바로 고교 자격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올 8월 그는 꿈에 그리던 고졸 합격증까지 손에 쥐었다. 희미한 교실에서 책을 잡은 지 8개월 만이었다. 60대의 경우 고교 과정은 5, 6번씩 시험을 치르는 게 보통인데 한 번 만에 통과하는 것은 드문 사례라고 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이렇게 결실이 빨라진 건 말할 것도 없이 불면의 면학 덕이었다.
◆교사들의 열정'헌신에 큰 고마움
학업을 접은 지 수십 년 만에 다시 잡은 교과서, 이미 굳을 대로 굳어진 머리, 공부가 쉬웠던 건 아니었다. 늦깎이 학생들의 '시들해진 뇌세포'를 야학의 교사들이 흔들어 깨웠다. 퇴직 교원, 회사원 등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교사들은 금전적 보상도 없이 순전히 재능기부로 학교를 운영했다. "학생들이 10여 명쯤 되었으니까 사실상 과외지도였던 셈이죠. 이해를 못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하면서 막힌 곳을 뚫어 나갔습니다."
이 씨는 특히 수학을 담당했던 조헌태(67'전직 교사) 선생님께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수학은 그가 가장 고전했던 과목이었는데 조 교사가 새벽까지 남아 개인지도를 해준 덕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노인상담 복지학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올 대입 수시모집에 원서를 냈던 이 씨는 지금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후보 자격이지만 순위가 높아 거의 합격이 확실시된다며 벌써부터 대학생활의 꿈에 부풀어 있다. 이 씨는 대학에 진학하면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졸업 후 고향인 고령으로 내려가 노인심리상담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다.
이 모든 과정에 어르신들을 위한 야간학교가 있었고 자신들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준 교사들이 있었다. 멘토로, 교사로 이 씨와 고락을 함께했던 교사들은 혹시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어르신들이 있으면 주저 없이 학교 문을 두드리라고 당부했다. 꿈꾸는 요셉학교 010-9333-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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