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대구경북학 정립하자] 21세기는 지역학이 경쟁력이다

입력 2016-09-29 04:55:02

바야흐로 국가의 세기가 가고 도시의 세기가 대두되고 있다. 21세기 접어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흐름의 하나는 국가주의의 퇴조이다. 세계는 지역 혹은 도시 간의 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하던 전통적인 국경은 사라지고 세계는 도시 상호 간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은 국가의 경쟁력보다 지역과 도시의 경쟁력에 더 많이 좌우되고 있다.

지난 세기의 시대정신은 이른바 경제 환원주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성장이 모든 형태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간주되었다. 국가는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가장 확실한 제도적 도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경제 환원주의는 전면 부정되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무모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들은 국가의 권능이 과대 포장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도시와 지역이 이제 삶의 중심적 거점이 되고 있다. 그곳은 그 옛날처럼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단지 군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단순한 공간(space)이 아니게 되었다. 그곳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적인 내력이 켜켜이 쌓여 있고, 함께 불렀던 노래가 골목 모퉁이의 들꽃으로 피어나고 있고, 너무 슬퍼서 몰래 혼자서 울어야만 했던 이야기는 가을 바람으로 불어오는 장소(place)로 존재하고 있다.

대기업을 끌어들이고 산업공단을 건설하는 일보다 지역의 고유한 장소성에 기반을 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많이 기여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지식 기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지역의 창조적 역량이 지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면 지역은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장소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당위적 전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들어 대구와 경북에서 지역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지역 정체성 관련 사업이 파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관 주도의 방식으로 맥락 없이 진행되다 보니 그 성과가 축적되지 않고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있는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이참에 대구경북학을 정립하여 지역 정체성 만들기와 관련한 모든 노력과 사업이 통합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도시와 지역의 장소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학문의 틀 속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 대구경북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적 요청 또한 있다. 청년 유출 문제이다. 청년 유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다소 시간이 걸리고 또한 우회적인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대구경북의 청년으로 하여금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자신에 내면화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공동체와 자신의 정체성을 일체화시킨 청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지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기보다는 지역공동체를 위기로부터 건져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공을 보장받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대구경북학을 통해 지역의 청년이 대구경북을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난 공간 이외의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 아니라 매우 고유한 의미를 지닌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대구경북의 지속적 생존과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실상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도시와 지역이 현재 무엇보다도 공들여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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