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醫窓] 착한 사마리아인의 조건

입력 2016-09-21 04:55:01

이상곤
이상곤

얼마 전 공항으로 가던 택시 승객이 운행 중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킨 택시기사를 방치한 채 자신의 짐만 챙겨 자리를 떠나 결국 택시기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사회적인 공분을 샀고,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제기됐다.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성경의 한 이야기로부터 비롯됐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 강도를 만나 심하게 매를 맞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때 제사장과 레위인, 사마리아인이 우연히 그의 곁을 지나갔다. 앞서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못 본 척 지나쳤지만, 세 번째로 그곳을 지나간 사마리아인은 쓰러진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성전에서 신께 제사를 인도하는 사람으로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할 지도자였다. 반대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차별과 멸시, 천대받는 비천한 신분이었다. 세 사람 중 '착한 사마리아인'만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강도 만난 사람을 정성껏 도운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도덕성이 결코 신분이나 지위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양심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배려,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얼마 전,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던 젊은 여성이 내원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의료진과 치료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환자였다.

그녀의 상황이 안타깝고 딱해 퇴근시간 후에도 병실을 방문해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진료 과정을 거듭 설명하고 회복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결과, 호전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완치된 그녀는 만족해하며 병원을 떠났다. 작지만 필요했던 공감과 배려가 그녀를 낫게 했다고 믿는다.

다시 성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사회적으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 기대되는 신분이었음에도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 이는 결국 사회나 타인에 의해 짊어지는 도덕적 의무감이 반드시 선한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데 그친다면, 법은 결국 강제로 도덕적 의무를 짊어진 이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법과 신분의 규제에 앞서 우리가 속한 가정, 사회, 일터 곳곳에서 진심으로 타인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갖도록 함께 격려하고 애쓸 때. 비로소 이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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