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이은봉 지음/천년의상상 펴냄
서기 200년 전후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등 3국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삼국지'는 숫자 3과 또 연관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에서 주로 읽었다는 것이다. 이들 3국은 삼국지를 저마다 다르게 읽었고, 이게 한'중'일의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삼국지는 3국의 정치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됐다. 시대마다 다른 욕망이 삼국지에 투영된 다음 현실로 나타나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 증거는 위'촉'오가 망하고 들어선 진나라의 학자 진수가 쓴 '삼국지'(정사 삼국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나온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다. 진수의 삼국지와 원나라 말기~명나라 초기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이렇게 두 버전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참 많다. 중국 남북조 시대 역사가 배송지가 진수의 삼국지에 단 주석(풀이, 해설)도 일종의 다른 버전으로 봐야 한다. 조조 및 위나라를 중심으로 쓴 진수의 삼국지에 배송지는 유비 및 촉나라의 동정적 일화를 추가했고, 이는 약 1천 년 뒤 나관중이 촉한(유비가 망한 한나라를 계승하기 위해 촉나라를 세웠다는 개념)을 정통으로 내세우는 삼국지연의를 쓰게끔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진수와 나관중 사이의 시기에 삼국지는 책 말고도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로 컨버전됐다. 입에서 입으로 야담으로 전해졌고, 전문 이야기꾼들에 의해 이야기 대본인 화본으로 정리된 것은 물론 연극으로도 공연됐으며,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펴낸 것보다 조금 앞선 원나라 때 글에다 그림까지 더한 책 '삼국지평화'도 발간됐다.
삼국지에 투영된 중요한 시대 상황이 하나 있다. 중국 역사에 거듭 나타난 사건이다. 바로 북방 오랑캐의 남침이다. 당시 사람들은 오랑캐가 아닌 한족이 중원의 주인이라는 정통론을 삼국지에서 찾아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대체로 두 가지 모습이었다. 대륙의 통일을 이뤄낸 진나라의 전신인 위나라에서 의미를 찾아 조조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기도(통일 왕조를 정통성 있게 본 북송의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 했고, 쇠퇴한 한나라를 부흥시키고자 촉나라를 일으킨 유비를 주목하기도(금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와 중원 회복을 도모한 남송의 주희가 쓴 '통감강목') 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삼국지는 어떻게 읽혔을까. 일본의 경우 15세기 즈음 에도시대에 삼국지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명나라 말기의 출판 붐과 에도시대의 문교 정책이 맞아떨어졌다. 이후 삼국지는 일본에서 철저히 일본식으로 변화했다. 에도시대 초기에 코난 후미야마가 쓴 '통속삼국지'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군기(전쟁 이야기) 소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어 화려하고 잔인한 장면을 묘사한 일본풍 그림이 삽입된 '회본통속삼국지'도 나왔다. 전통 인형극 조루리에서 삼국지는 무사적 충의를 강조해 막부의 이념을 선전하는 이야기로 쓰였다. 모두 일본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면서 오락성도 가미했다. 이는 최근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서 삼국지를 소재로 쓰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에이(KOEI)사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는 1990년대 한국의 수많은 남학생들이 PC 앞에서 밤을 새우게 만들었다.
한국에 삼국지가 최초로 유입된 시기는 원나라 때 발간된 삼국지평화가 고려 상인에게 판매됐다는 문헌상 기록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는 삼국지연의를 임금도 읽었고 민간에까지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 늘 전쟁에 휩싸여 있던 일본에서 군기 소설의 영향을 받아 삼국지가 유행한 것처럼, 조선에서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삼국지가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한글로도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삼국지는 필사본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면서 대중화됐다. 삼국지는 역사서보다 쉽고 대의에 대해 잘 알려주는 것은 물론 재미까지 제공한다는 이유로 부녀자와 아이를 위한 일종의 '교화서'로 인식됐다.
수많은 번역 및 필사는 자연스럽게 다채로운 각색으로 이어졌다. '기미년 여름 (서울) 홍수동에서 새롭게 간행하다'라는 기록이 적힌 한 삼국지 필사본에는 촉의 명장 조자룡(조운)이 초인으로 등장한다. 하늘의 기운을 읽고 동료 관우를 구하거나, 재주를 부려 말을 타고 강을 뛰어넘는다. '언삼국지' 완판본 하편 '공명선생실기'는 촉의 명군사 제갈량의 부인 황월영이 도술을 펼치는 이야기다. 황 부인이 주인공이 돼 유비의 적 조조의 횡포를 막고 남편을 도와 오랑캐를 물리친다. 초인이 된 조자룡과 주인공이 된 황 부인, 당시 민중들이 원하던 영웅과 여성의 삶을 이본(원본과 내용이 다른 작품)이 보여준 건 아닐까. 역사서(교훈)와 소설(재미)의 의의를 모두 충족하려는 한국판 삼국지의 전통은 20세기 이문열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만화) 등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계속 이어졌다. 333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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