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는 식사하시기 전 음식을 조금 떼어내어 놓았다가 식사 후 밖에 던지며 '고시레!' 하고 외치셨다. 정식으로는 '고수레'라 하는데 할머니는 이 고수레를 하지 않고 식사를 하면 체하거나 탈이 난다고 믿으셨다. 하지만 고수레가 신에게 첫술을 떼어 바치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음식이 부족한 야생동물들에게 먹는 것을 조금 나누어 주는 의미도 갖고 있다는 것을 듣고 나서는, 이 매력적인 미신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젓가락으로 밥알과 가장 맛있는 반찬 몇 가지를 작은 종지에 덜어놓는 동안, 나는 그것들을 죽은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작은 새와 다람쥐, 벌레들이 몰려와 나누어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과 자연에 속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어릴 적 가장 처음으로 인지한 나눔에 대한 당연한 일상이었다.
할머니는 살가운 분이 아니셨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가르쳐 주셨다. 제사 때 지방을 쓰고 법문을 읽고 상을 차린 뒤 멀리 물러나 남자들이 절을 한 뒤 절을 몇 번을 해야 하는지, 왜 제사 중간에 젓가락을 옮기는지, 제사 음식에는 왜 고춧가루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지를 무심하게 알려주시곤 했다. 그것은 내겐 새로운 세계였고 나는 할머니가 하시는 신비롭고 오래된 미신과 전통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내가 청소년기에 들어와 학교에서 세상의 신비란 없다고 배울 무렵 개종을 하셨고 그 모든 행위는 다 먼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다. 기억 속 희미한 향 냄새와 할머니가 차를 타실 때마다 돌리시던 염주와 기도의 의미를. 너무 똑똑하고 깔끔하신 성미 탓에 3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가 할머니 집에 가서 말썽을 부리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호통을 치시기도 했지만, 분가한 뒤 주말에 찾아가 할머니 곁에 앉으면 수척해진 손가락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실 때 부드럽게 휘어지던 눈가의 미소. 많은 연세에도 결코 시드는 법이 없었던 뽀얀 할머니의 피부 위에 죽음의 그림자처럼 번지던 검버섯. 그리고 마지막 쓰러지시던 날 손을 떨며 꿀물을 입에 넣어 드릴 때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잡으시던 모습까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나는 할머니의 젊은 날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할머니를 추억하는 까닭은 할머니도 먼 옛날 젊고 고운 처녀였고 당신에게도 꿈 많고 사랑이 가득한 시절이 있었을 거라 믿어서다. 그리고 내게 물려주신 크고 작은 유산들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다.
사람을 사랑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내게는 이런 것이다. 삶을 내려 살아가는 것. 조상들로부터 할머니, 어머니에게로 이어져 이윽고 내게 받아들여지는 삶이다. 가슴 먹먹하고 끊어낼 수 없는 긴 삶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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