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셀리켓(celliquette)

입력 2016-09-08 04:55:05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활이 분주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섬세한 동작을 비추는 조명등 불빛만 무대 위에 내려앉았다. 필자는 컴컴한 관람석 뒤편에 앉아 유럽 정상급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심포니 음향에 청각을 곤두세우며 지휘자의 날렵한 몸짓과 섬세한 지휘봉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잔잔한 선율이 도입부를 건너 힘차게 약동할 무렵이었다.

그때 앞줄 오른편에서 새나온 낯선 불빛이 시선을 어지럽혔다. 중년의 한 여자가 휴대전화를 켜고 수신된 문자를 확인하더니 재빠르게 손끝을 놀리고 있었다. 쏘는 듯한 휴대전화 광선과 경박한 동작이 몹시 그슬렸다. 한참 후에 불쾌한 빛은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한 사내의 휴대전화 속삭임이 청중들의 조용한 몰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20년 전만 해도 없었던 꼴불견이다.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요상한 풍경들도 자주 눈에 띈다. 비좁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문자 버튼을 정신없이 눌러대는 처녀, 그 옆에 손바닥만한 모니터를 보면서 혼자 히죽거리는 총각, 길을 걸어가면서 귀에 이어폰을 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아저씨, 도서관 계단에 앉아 자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줌마…. 그들에게 휴대전화는 보물단지일까? 애물단지일까?

여기서 잠깐 옆길로 새 보자. 최근 휴대전화로 부자가 된 기업은 삼성이나 애플 등이지만 처음 핵심 기술을 개발한 회사는 AT&T. 1980년 무렵이다. 그런데 기술을 개발한 직원들은 라이선스를 금방 모토로라에 팔아버렸다. "누가 길거리를 걸으면서 전화를 하고 싶어 할까? 설마 이런 물건을 사람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겠어…." 과학자들은 종종 미래를 잘못 예측한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에 선보인 휴대전화는 2006년 가입자 4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제 누구나 이 보물단지로 언제 어디서나 대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빠르고 편리한 것을 트집 잡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휴대전화가 대화의 밀도와 사고의 깊이를 옅어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침묵과 고독 없이는 진정한 창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급기야 셀리켓(celliquett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cell phone(휴대전화)과 etiquette(예절)의 합성어로 짐작된다. 잡담과 소음, 시각 공해를 남발하는 휴대전화 소지자들에게 단정한 윤리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전화 개발 기술과 디자인 실력을 갖춘 한국이지만 정작 사용자들의 에티켓은 후진성에 머물고 있다. 휴대전화를 끄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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