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은 과거 나병으로 불렸고, 하늘이 벌을 내린 천형이라고까지 했다. 구약시대와 세계 대부분 문명에서 신의 저주 취급을 받았고 스스로 부정한 자라는 신호를 항상 보내야만 했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됐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고립된 삶을 살았다. 한센병에 대한 치료약제가 없어서 전염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리됐을 것이다. 여수 애망원에서 손양원 목사가 한센병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치료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근년에는 좋은 약제의 개발로 치료율이 좋아졌고 새롭게 발생하는 감염환자도 극히 드물다.
정기적으로 외래진료실을 찾는 여든이 넘은 간암 환자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10여 년 전, 다른 한 분은 5년 전 간암 수술을 받았다. 공통점은 한센병 환자다. 안면신경이 마비돼 눈꺼풀 겉말림과 말초신경마비로 손가락이 틀어졌고, 걸음이 불편한 모습도 똑같다. 그중 한 분은 만성 B형 간염 보균자, 다른 한 분은 C형 간염 보균 상태다.
B형 간염은 10여 년 전부터 바이러스 분열을 억제하는 좋은 약제가 개발돼 바이러스 활동은 거의 중단됐다. C형 간염은 최근 2, 3년 사이에 부작용이 거의 없으면서 바이러스를 거의 박멸하는 DAA(direct acting agent) 라는 획기적인 약제들이 개발됐다. C형 간염은 여러 가지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형에 따라 다양한 약제를 투여하게 돼 있다.
가장 큰 장벽은 경제적인 부담이었다. 약제가 너무 고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인에 가장 흔한 유전자형인 1형에 사용하는 약제가 지난 5월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됐다. 한센병 환자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이 약제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환자에게 처음 약제를 소개했을 때 환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쿠, 약 안 쓸렵니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요. 평생 고생만 해 왔어요. 열여덟 살부터 깡통 들고 빌어먹어 온 그 인생 역정이 진절머리나요."
보호자로 늘 동행하는 할머니는 "그런 얘기하지 말고 치료받도록 해요"라고 점잖게 남편을 타일렀다. 할머니도 한센병이지만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다. "자식들도 저들 애들만 신경 쓰지 부모들은 안중에 없어요. 제가 챙길 수밖에 없지요"라고 했다. 처절했던 그의 인생 역정에 공감하며 설명을 더하니 환자는 나의 투약 권유를 받아들였다.
대화를 나누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한센병 환자들은 보통 두 명씩 짝을 지어 시시때때로 깡통을 들고 문전걸식을 했다. 어머니는 이들의 깡통에 밥 한 그릇을 부어 드리곤 했다. 할아버지께서 때때로 어머니에게 "제대로 한 상 차려드려라"고도 하신 기억도 났다. 의료 기술이 발달해 한센병 환자도 간염 환자도 완치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들에 대한 치료 재원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걸 보며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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