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이비 평화 논리

입력 2016-08-30 04:55:05

1983년은 서독의 반핵 평화운동의 전성기였다. 운동의 목표는 1979년 1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서유럽에 배치하기로 한 미제 퍼싱Ⅱ 핵미사일과 순항미사일 446기의 배치 철회였다. 나토의 이런 결정은 1975∼1976년 소련이 서유럽을 겨냥해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등에 배치한 신형 중거리 미사일 SS-20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서유럽을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토는 이런 결정을 하면서 당시 서독 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주도로 소련과 미사일 감축 협상도 함께 진행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이른바 '이중결의'(dual track decision)이다. 이에 대해 서독 내 반핵 평화운동 단체들은 미국이 유럽을 핵전쟁으로 몰아넣으려 한다며 결사반대로 맞섰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의 하나가 '크레펠트 평화호소회'이다.

반핵 평화 운동의 절정으로 꼽히는 1983년 10월 본에서 열린 시위는 이 단체가 주도한 것으로, 무려 30만 명이 몰렸다. 이 시위에 동방정책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도 참석해 미제 미사일의 일방적 포기를 정부에 요구했다. 이날 채택된 청원서를 '크레펠트 청원'이라고 하는데, 퍼싱Ⅱ와 크루즈 미사일의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것으로 모두 270만 명이 서명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이들이 미제 미사일 배치에는 격렬하게 반대하면서도 그 원인인 서유럽을 초토화할 수 있는 SS-20의 동유럽 배치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신들만이 평화를 애호하는 세력인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SS-20 배치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전쟁을 원하는 세력'으로 몰아갔다. 미국은 전쟁을 원하며, 서유럽 내 미제 미사일은 소련에 대한 선제공격용 무기라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선동이었다. 훗날 독일 통일 이후 이들 단체는 서독 공산당은 물론 동독 공산당과도 긴밀히 연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의 논리도 이와 똑같다. 사드 배치 결정의 원인인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게거품을 물고 부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드만 없으면 한반도의 전쟁 위험도 저절로 사라지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런 사이비 평화 논리에 이제 제1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북한 핵과 미사일의 포로가 되자는, 참으로 한심한 군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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