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서상돈상 수상자, 국제염직(주) 이승주 회장
"전 세계 1등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일해야죠. 그러면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을 겁낼 필요가 없고, 한국 섬유산업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해요."
제9회 서상돈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승주(89) 국제염직㈜ 대표이사·회장은 "제가 받기에는 너무 큰 상이어서 처음에는 사양했다"며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평생 개인적인 잔치 자리는 열지 않았는데, 이번 시상식에 작년에 미뤘던 미수연(米壽宴)을 겸해 친지들을 초대하고 싶다"며 진심 어린 기쁨을 표했다.
이 회장은 한국 섬유산업을 일군 거장이다.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1980~88년)을 지내며 섬유산업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무렵 이후 대구비산염색공단 조성을 주도하면서 대구 섬유산업이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삶이 곧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한국 경제의 기틀은 섬유산업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1950, 6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소재를 구할 수 있고, 여기에 우리 인력을 투입해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섬유가 유일했어요. 단순 조립에 그치는 자동차나 전자산업보다 훨씬 부가가치가 높았죠. 섬유산업이 우리 땅에 남기는 이익이 그만큼 많았다는 겁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해방과 6'25동란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학(연세대 상경대)을 다녔고, 10년간 경찰 생활을 하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직장 생활도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서울의 한 섬유회사 말단사원으로 시작했다. 의복공장이 가업인 섬유인의 피 덕분일까. 그는 그 회사에서 실력과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취업한 지 3년 만인 서른여덟의 나이에 공장장이 됐다. 1970년대 초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직물감량가공 기술을 개발, 보급한 그는 섬유수출 초기의 척박했던 환경을 이야기했다.
"폴리에스터 원단을 미국에 실어 보냈는데, 포장재가 없어 새끼줄로 원단을 묶어 실어 보낼 정도였어요. 뉴욕에서 검역통과를 못 시킨다며 아주 난리가 났죠. 나중에 당시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가 우리 공장(서울)을 방문하셨는데, 한 시간 동안 이런 얘기를 드리면서 섬유산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었던 게 기억나요."
1965년 현 국제염직㈜ 대표가 된 이 회장은 1971년 대구로 기업을 이전한 후 1978년 서대구공단 내 현 부지에 국제염직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 회장은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주저 없이 비산염색공단 조성을 꼽았다.
"당시만 해도 염색공장이 도심에 산재해 있었어요. 자연히 이웃과 마찰이 많았지요. 이런 염색공장들을 한곳에 모으면 오염원 관리도 쉽고, 증기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지요. 선진국에서도 엄두를 못 내던 일을 우리가 한번 해보자,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지요."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대구의 비산염색공단과 서울 반월공단, 부산의 심평공단 등 현재 전국 대도시의 염색전용공단이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탄생했다. 이 회장은 "공동폐수처리장을 활용하고, 열병합발전소를 건립해 전기를 생산한 것은 비산염색공단이 1호였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기업 각자가 수입해 쓰던 염료를 국제입찰 방식으로 공동구매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구매하는 등 전용공단의 이점이 많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 이탈리아 염색공동위원회 설립을 주도해 양국 신뢰에 기반을 둔 기술교류에 앞장서는 등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의 산파 역할을 했다.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 바른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염료산업이 '사치산업'으로 지목돼 중과세를 물 지경에 처했을 때,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코트라의 지원이 아쉬울 때마다 정부에 바로잡아 줄 것을 직언했다.
그는 이런 공로로 석탑산업훈장(1982년)'은탑산업훈장(1987년)'금탑산업훈장(1995년)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받았다.(표 참조)
사회 공헌활동에도 앞장섰다. 2009년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건립 성금을 기부한 것을 비롯해 해마다 사회복지기금과 이웃돕기 성금을 전달해왔다. 2012년에는 성실납세에 앞장서 국세청장 포장을 받는 등 솔선수범했다.
"내가 만드는 제품 하나가 '메이드 인 코리아'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모든 섬유인이 한마음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품질관리에 임해야지요. 강소기업이 많은 우리 섬유산업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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