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한·중·일 3국 정상 모두 초청
서방의 제재로 동방 향한 교류 창 열어
경제·문화 등 다면적인 교류 확대 통해
사드 배치 등 정치적 사안 해결 관심을
지난달 극동연방대학 출장차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해변을 잠시 걷는데 대체 여기가 어딘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로 지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얼마 전 TV 여행 프로그램에 이 도시가 꽤 매력적으로 소개돼서 그렇단다. 그게 아니라도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한국을 떠나 두 시간 남짓이면 초가을처럼 선선한 이 도시에 도착하니 피서지로도 나쁘지 않다. 길을 가던 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하는데, 군 입대 후 몇 년을 못 봤던 제자였다. 얼마 전 제대하자마자 친구들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놀러 왔단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도 많이 좁혀졌다는 방증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도시 이름엔 제국주의적 뉘앙스도 다소 느껴진다. 이곳에 러시아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인데,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된 20세기 초 이후 극동의 교통과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군사 요충지이기도 해서 소련 붕괴 이전까지는 일반인들의 출입조차 통제되던 이 도시가 오는 9월 2일부터 개최될 제2차 동방경제포럼을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학 캠퍼스는 건물만 달랑 있기 마련인 러시아의 다른 대학들과 달랐다. 해변의 광대한 부지에 멋진 조경과 초현대식 학교 건물, 태평양을 향해 리조트처럼 지어진 숙소 등은 2012년 푸틴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극동지역 대학들을 통합하면서 이례적으로 많은 자본이 투입된 이 캠퍼스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될 것이란다. 푸틴은 한'중'일 3국 정상 모두를 초청해서 이 행사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데, 향후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경제와 문화 발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쳐 있는 나라이지만 전통적으로 유럽을 지향해왔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예술 문화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도 유럽을 향한 창이라 불리는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천도해서 유럽 각국의 문화를 모방한 덕분이었다. 반대로 몽골의 침입에 200년 넘게 고통을 겪은 역사 때문인지 오랫동안 아시아는 야만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황제 눈에 벗어난 정치범들을 유형 보냈던 시베리아보다도 더 멀리 있는 미지의 땅이 극동이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는 그리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푸틴은 현재 러시아가 처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극동을 바라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에서의 입장 차이로 야기된 서방과의 껄끄러운 관계와 경제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선 본인들의 강점인 에너지 자원 수출 판로를 동북아 지역으로 다변화하여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값싼 러시아 전력과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방안은 동북아 국가들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뿐이랴. 극동은 광활한 영토에다 농업, 수산업, 임업, 관광자원 등의 보고이며, 그 중심지 블라디보스토크는 북극항로의 중요 기점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은 에너지 산업뿐만 아니라 극동 지역 개발 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대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택지 개발, 도로 준설, 항만 개발, 리조트 건설 등 기반 사업에 일본과 중국의 대기업들이 투자했다는 뉴스가 포럼 홈페이지를 매일 새로 장식한다.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은 아직 조용하다.
이번 포럼에는 우리 대통령도 참석하여 푸틴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사드 배치를 두고 러시아, 중국과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정치 논리를 빼고 경제적 실익만을 차리라는 것이 아니다. 경제와 문화 교류의 증대가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통일 시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경계를 넘어 다면적인 교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방을 향한 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포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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