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한국영화 대전 승자는?

입력 2016-08-30 04:55:05

'대작'만 살아남은 여름 극장

푹푹 찌던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성수기 극장가에서 치열하게 펼쳐진 기대작들의 경합도 마무리되고 있다. 여름철 스크린은 국내 주요 배급사가 주력 아이템을 투입해 정면승부하는 피 튀기는 싸움판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관객 수가 급증하는 시기이며 동시에 전력이 약한 영화는 경쟁작에 밀려 굴욕을 맛봐야 한다. 올여름엔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 100억원대 대작들의 경쟁이 이뤄져 '한국영화 빅4의 여름 관객 쟁탈전'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만만찮은 제작비가 투입된 '국가대표2'는 애초 '빅4'에서 탈락돼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맛봐야 했다. 주요 한국영화들이 격돌한 가운데 '제이슨 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할리우드 대작까지 들어와 좌충우돌했다. 8월의 끝자락에서 올여름 극장가에서 진행된 기대작들의 전쟁 결과를 살펴봤다.

◆1,100만 '부산행' 기대 이상의 결과

#좀비 영화서 볼 수 없었던 액션 신에 호응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돋보인 영화는 단연 '부산행'(감독 연상호)이다. 7월 20일 개봉돼 무려 1천100만 명 고지를 넘어섰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좀비 블록버스터로 이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영화다. 하지만 국내 정서를 적절히 반영한 내러티브와 그동안 좀비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 신을 만들어내 호응을 얻었다. '부산행'의 배급사 NEW는 올 초 자사에서 첫 제작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빅히트시켰지만, 그 후로 '오빠생각' '널 기다리며' 등의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해 자존심에 금이 간 상태였다. '태양의 후예'로 중국시장에서도 승승장구하며 급등했던 NEW의 주가도 후속 영화들의 부진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자칫하면 위기론이 불거져 나올 상황이었지만, '부산행'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들인 지금은 다시 한 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며 위치를 공고히 하는 중이다.

◆700만 '인천상륙작전' 논란 속 관객몰이

#朴 대통령 영화 관람…'애국주의' 논란

한국영화계 최강자 CJ E&M이 배급한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도 7월 27일 공개된 후 8월 4째주까지 68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여전히 박스오피스 5위권을 넘나들며 적으나마 관객을 모으고 있어 뒷심을 발휘하면 최종 스코어 700만 명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행'이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로 호평을 자아냈던 데 반해 '인천상륙작전'은 공개된 뒤부터 줄곧 논란에 휩싸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애국심을 주입시키는 소위 '국뽕'(인터넷 용어로 애국주의를 강요한다는 의미의 속어) 영화라고 불리며 비난 여론이 일어났고, 동시에 평단에서는 치밀하지 못한 내러티브와 만듦새 등을 지적하며 낮은 점수를 줬다. 반대진영에서는 '한국인이라면 꼭 봐둬야 할 영화'라고 극찬하며 관람운동을 펼쳤다. 앞서 '연평해전'이 개봉됐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되며 텍스트가 아닌 콘텍스트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심지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고 청와대가 공식 SNS에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글을 올리며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인천상륙작전' 관람을 두고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정신을 한 번 더 되새기고, 북한의 핵 위협 등 안보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분열하지 않도록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두고 '이쯤 되면 정부가 지정한 교육물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영화의 질적인 문제에 대한 평가가 힘들어질 정도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특히 정부가 나서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홍보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500만 '덕혜옹주' 여배우 영화 징크스 깨

#실존인물 실화 바탕 역사물로 중장년층 동원

8월 3일 개봉된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도 관객 수 500만 명을 훌쩍 넘기며 흥행 가도에 올랐다. 손예진과 박해일이 주연으로 나섰으며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을 연출한 멜로의 명장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만 13세에 일본으로 끌려간 실존인물 덕혜옹주의 실화를 그린 작품으로 손예진이 타이틀롤을 맡았다.

애초 이 영화는 '부산행'이나 '인천상륙작전' 등 여름철을 겨냥한 블록버스터와 판이하게 성격이 달라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여배우를 중심에 세우면서 남자배우 위주의 영화가 주로 살아남던 충무로의 경쟁구도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장년층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물이란 장점이 있었으며 섬세한 감성의 허진호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비 멜로'라는 사실이 영화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역사물, 또 허진호 감독이란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흥행에 적절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남자배우 중심의 영화만 성공한다던 충무로의 징크스도 깨졌다.

◆500만 '터널' 하정우 효과 톡톡

#주연배우 원맨쇼 가까운 분량 홀로 소화

8월 10일 스크린에 걸린 '터널'(감독 김성훈)은 '하정우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개봉 후 12일 만에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어서며 무서운 기세로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남자가 무너져 버린 터널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더 테러 라이브'로 원맨쇼에 가까운 분량을 홀로 소화하며 호평받은 하정우가 또다시 유사한 형식의 재난영화에 도전해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더 테러 라이브'에 비해 주변인물의 비중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포커스는 주연배우 하정우에게 집중됐다. 하정우가 선두에서 극 전체의 긴장감과 재미를 견인하고 후방에서 주변 캐릭터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오히려 재난극 치고는 뒷심이 약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에 대한 관객의 신뢰가 이 영화를 흥행작으로 만들었다.

개봉 3주 차까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고수하는 중이다. 이 영화의 배급사는 지난해 '암살' '내부자들' '사도' '검사외전' 등 빅히트작을 줄줄이 내놨던 쇼박스다. 올해 '굿바이 싱글' 외 눈에 띄는 라인업이 없었지만 '터널'의 성공으로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70만 '국가대표2' 비운의 수작

#개봉 초 스크린 확보 어려움…시기 잘못 만나

'터널'과 함께 8월 10일 개봉된 또 한 편의 한국영화 '국가대표2'(감독 김종현)는 동시기에 7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배급한 영화로 하정우가 출연한 히트작 '국가대표'의 속편으로 제작됐지만 개봉 초부터 경쟁작에 밀려 스크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 최초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실화를 다뤘으며 수애와 오연서 등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완성도나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리우 올림픽 시기에 극장에 걸어 시너지효과를 내려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작 '국가대표'가 개봉 당시 '해운대'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입소문에 힘입어 뒤늦게 흥행 가도에 올랐던 것에 비해, '국가대표2'는 이미 상승세를 탈 기회를 잃어버린 상태다. 이 정도로 외면받을 작품이 아님에도 시기를 잘못 만나 아쉬운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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