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열세 개의 사랑의 뼈들

입력 2016-08-29 04:55:08

김수상 시인.
김수상 시인.

숟가락이 평생을 가도 밥맛을 모르고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이, 희생하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국자하고 숟가락 같은 시를 써야 한다. 밥과 국을 그대 안에 한평생 떠 넣어주고 싶다.

가지는 가지 마라는 곳으로도 뻗는다. 시의 가지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말에 떠내려가고 말에 실려 가는 사람, 마침내 말에 버림받는 사람. 그럼에도 끝끝내 말을 그리워하는 사람.

좋은 글은 세계를 자신의 고통으로 물들인 글이 아니라, 제 몸을 뚫고 들어온 정체 모를 '그 무엇'을 해독하는 글이다. 그 해독의 과정이 고통이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꺾어진 지점에서 한 번 더 비틀어야 한다. 레슬링 선수가 꺾은 데를 한 번 더 꺾어 상대를 제압하듯이, 관절 마디가 툭, 분질러지는 느낌이 와야 한다. 내 시는 그 지점에서 늘 실패한다.

사물은 발기한다. 시인은 그것을 세차게 빠는 사람이다.

행만 갈면 시가 되는 줄 알았다. 이만 갈면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가 다 망가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좋은 시는 말이 말을 책임지지 않았는데도 책임 있는 땅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설명이 저급하면 변명이 된다. 내 시의 설명은 고위 관료가 인사청문회에서 하는 싸구려 변명 같다. 변명을 걷어내지 않으면 시는 끝장이다.

이 세상은 태양의 힘으로 자동충전이 가능하도록 계획적으로 설계된 놀이공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가차 없이 추방되고 말 것이다.

불안을 이기려면 더 큰 불안과 손잡고. 고통을 이기려면 더 큰 고통과 손잡고.

미움은 미워하면서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면서 자란다.

어디서 매를 맞고 돌아다닌 하늘이 돌아와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파랗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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