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서민 위로한 '희극계 대부' 구봉서

입력 2016-08-27 09:28:33

"코미디는 풍자"…약자 대변한 채플린 신봉자

코미디언 구봉서는 우리나라 희극계의 대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연예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배삼룡, 곽규석 등과 콤비를 이루며 1960~80년대 한국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다.

1926년생 평양 출신인 그는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직후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아코디언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던 그는 급히 악사를 구하던 태평양악극단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그는 1940~60년대 연극, 만담, 코미디, 노래가 어우러지는 악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양석천 양훈 김희갑 서영춘 배삼룡 등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충무로에 진출해 코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수학여행',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가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염통에 털난 사나이',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영화 '오부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 영화에서 막둥이로 나온 구봉서는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1969년 MBC TV 개국과 함께 탄생한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비실이' 배삼룡과 명콤비로 연기를 선보이면서 국민적인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 '쇼쇼쇼'에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뤄 새로운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라면 CF에 등장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구봉서는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은퇴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풍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며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60년 이상 희극인으로 살면서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구봉서는 은퇴 후 종교 생활에 전념해왔다. 인기가 정점에 있던 1970년대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며 연예인 선교에 힘쓰며 서울 평창동의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향년 90세의 일기로 27일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