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외교관 탈북의 의미

입력 2016-08-20 04:55:01

194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는 좌파, 더 정확하게는 소련 공산주의가 인간 해방의 길을 열었다고 믿는 '종소'(從蘇) 지식인들의 소굴이었다. 그들은 소련 전역이 '굴라그'(강제노동수용소)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소련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러한 위선을 잘 말해주는 사건이 소련 정보장교로 2차 대전 중인 1944년 6월 미국으로 망명한 빅토르 크라프첸코가 당시 프랑스 공산당의 지식인 잡지 '레 레트르 프랑세즈'를 상대로 제기한 이른바 '크라프첸코 재판'이다.

크라프첸코는 1946년에 회고록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를 출간했는데, 1947년 5월 같은 제목으로 프랑스에서도 출간됐다. 내용은 소련 내 대규모 숙청과 학살, 말로만 듣던 '굴라그'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레 레트르 프랑세즈'는 크라프첸코의 책이 미국 정보당국이 조작한 거짓말로 가득하다며 집요하게 공격하자 크라프첸코는 1948년 '레 레트르 프랑세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렇게 해서 1949년 1월부터 4월까지 프랑스 전역의 관심 속에 진행된 이 재판은 당시 프랑스 진보 좌파가 얼마나 억지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이 재판의 피고는 마리 퀴리의 사위로 노벨상 수상자인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 레지스탕스 영웅이자 파리근대미술관 관장이었던 장 카수 등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크라프첸코의 주장에 내포된 의미는,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했다. 최종 판결에서 이들은 졌다. 그러나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재판부가 크라프첸코에게 배상금으로 1프랑을 지급하라는 모욕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진보 좌파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한국에 망명한 '사건'으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북한 엘리트 계층의 이반(離反)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참사관급 이상 북한 외교관이 매달 1, 2명씩 탈북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남한 종북주의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과거 언행으로 미뤄 크라프첸코가 전한 '소련의 진실'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거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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