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보다 찬란한 '배려·동행·승복'…리우의 '진짜 승자들'

입력 2016-08-19 10:58:34

남미 최초로 열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각종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불굴의 투혼으로 인간 한계에 도전해서 일궈낸 선수들의 값진 성과에 전 세계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리우에서는 저조한 성적에도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관심과 사랑, 찬사를 받은 이들이 있다.

경기 도중에 크게 다치고도 넘어진 생면부지의 선수와 완주하고 탁구 경기에서 0패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1점을 배려한 듯한 선수들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사이클 경기 도중에 실수로 부딪힌 상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복싱링에서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 판정에 깨끗이 승복한 선수도 찬사를 받았다.

깨끗한 승부를 펼치되 상대방을 끝까지 배려하는 '스포츠맨십'을 실천한 선수들이 올림픽의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안팎에서 나온다.

메달과 기록에만 집착하지 않고 선수와 관중이 희로애락을 공유함으로써 '지구촌 축제'의 의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지난 16일(한국시간) 여자 육상 예선전에서 포착됐다.

뉴질랜드 대표 니키 햄블린은 5,000m 달리기에서 갑자기 넘어졌다. 뒤쪽에 있던 미국 선수 애비 다고스티노에게 걸려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햄블린이 4년간 피땀 흘려 준비한 메달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트랙에서 망연자실했다.

그때 다고스티노가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일어나. 결승점까지 뛰어야지"라고 말했다.

이날 처음 만난 그의 위로에 용기를 얻는 햄블린은 곧바로 일어났다. 정작 다고스티노는 계속 달릴 수 없었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심하게 다친 탓이다.

이번에는 다고스티노가 일어나도록 햄블린이 도왔다. 서로 힘이 된 두 선수는 약 1,800m를 달려 결승선을 통과하고서 뜨겁게 포옹했다.

그 순간에 관중석에서는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휠체어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 간 다고스티노는 '무릎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중상을 당했는데도 그때 행동을 후회하기는커녕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다고스티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내가 이런 일에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며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올림픽 정신의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만족했다.

지난 16일 사이클 경기에서 생긴 돌발 사고는 증오를 화해로 승화시킨 사례다.

주인공은 한국 대표 박상훈(23.서울시청)과 사고 빌미가 된 마크 캐번디시(영국)이다.

박상훈은 행렬 앞뒤로 이동하는 캐번디시를 피하려다 부딪혀 넘어졌다.

천재일우로 얻은 올림픽 출전이 너무 허망하게 끝난다는 아쉬움에 캐번디시를 원망도 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앞선 선수의 주로를 예측하지 못한 잘못도 있다며 '내 탓이오'를 되뇌었다.

캐번디시가 준우승해 증오심이 생길 수도 있었으나 다음날인 17일 선수촌에서 기자들을 만난 박상훈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포털과 SNS에서 캐번디시를 향해 쏟아진 비난 글을 보고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심경도 털어놨다.

선수촌에서 전날 밤 쉬다가 캐번디시의 전화를 받은 사실도 소개했다.

"'미안하다. 주로를 급변경한 잘못이 크다'라고 사과했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전화도 부족해서 문자도 보냈다"라고 말했다.

캐번디시는 "빨리 쾌차해서 다음 경기에 같이했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도 남겼다.

영어에 능통한 박상훈은 "어제 위험했는데 큰 부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약 먹고 괜찮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진정한 참회와 사과에 통 큰 용서를 한 대인군자의 면모였다.

북한 김송이와 일본 후쿠하라 아이가 맞붙은 탁구 여자 개인전 준결승전에서는 중국팬들이 후쿠하라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尖閣·일본명 센카쿠)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다.

진풍경은 후쿠하라가 중국 랴오닝성과 광둥성에서 선수로 활약한 인연 때문에 생겼지만, 스포츠맨십도 한 원인이다.

지난 8일 예선전에서 루마니아 선수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앞선 가운데 맞은 4세트에서 11대 1로 승리했다.

11:0으로 이길 수도 있었으나 영패를 면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실수한 것으로 중국 언론은 추정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탁구계는 상대가 영패하는 완봉승은 피하는 게 관례다.

중국팬들은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후쿠하라 절반 정도라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 복싱의 유일한 올림픽 선수인 함상명(21·용인대)도 사각의 링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

편파판정 논란이 심한 복싱 경기에서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한 것도 모자라 상대 선수를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8강전에서 중국 대표 장자웨이(27)를 맞아 강한 펀치로 초반에 몰아가는 듯했으나 결국 판정패했다.

함상명은 이내 장자웨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공개적으로 패배를 수용하는 동시에 승자를 인정하는 매우 드문 광경이었다.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장자웨이를 꺾은 터라, 이런 몸짓은 큰 여운을 남겼다.

응원 관중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경기 후 관중석 한국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