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주간매일, 33년을 돌아보다(중)] 당시 제작진들 회고-주간매일 광고 산증인 남

입력 2016-08-18 04:55:02

◆주간매일 광고 산증인 남해걸 씨=주간매일의 창간은 전국 언론사에서 한 장(章)으로 기록될 만큼 언론사적 의의를 가진다. 한 매체의 운영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숙제가 있으니 바로 광고다. 광고는 신문사 수익 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야다. 더구나 새로 출발한 매체가 광고시장을 어떻게 끌고나갈 것인지 전국 언론사들도 주목을 했다.

당시 주간광고국에서 영업을 맡았던 남해걸(67) 전 광고부장은 "초기의 주간매일 광고를 '쪼가리 광고'라고 할 정도로 각계각층의 생활정보가 망라되었다"고 말하고 "당시 지면을 보면 신용금고, 조리사'중장비학원, 학습테이프, 속기사, 병아리감별사 같은 광고가 빼곡하게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초창기 12면 지면에도 이런 명함 크기부터 손톱만 한 광고까지 70여 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생활정보지를 표방하면서 광고까지 실생활정보로 메워 놓으니 서로 간 궁합이 맞았던 것이다.

생활정보 위주로 광고가 꾸려지면서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광고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주간지의 빈틈을 이용해 초기에는 각종 성인물, 남성 물리기구, 성기능 광고가 몰리기도 했다.

"한번은 사장 신부님이 호출해 급히 가보니 '칙칙이' '보형물확대' '음양곽' 이 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표정을 보니 정말로 모르시는 것 같아서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습니다." 그 일 이후 주간지에서 '성기구' 광고는 일절 사라졌다.

사실 경제논리로만 볼 때 주간매일 광고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정책경제와 가정'실물경제 사이에서 그 나름의 틈새시장을 형성하며 광고주와 독자를 이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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