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베일인'이 뭣꼬?

입력 2016-08-10 05:00:02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내건 선거구호가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파격적인 이 슬로건은 클린턴 당선에 혁혁한 역할을 했다. 대중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프레임(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인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아주 잘 만들어진 프레임 사례로 꼽힐 만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머리 좋은 인재(Elite)들이 경제계에 많이 포진돼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들 역시 프레임 선점에 능하다. 이들이 프레임 선점에 동원하는 무기 중 하나는 교묘한 '네이밍'(이름 붙이기)이다. 사회 파급력이 큰 정책이나 제도일수록 이해하기 힘들거나 세련된 단어들을 붙인다. 대중들의 거부감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연방'(Federal)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FRB는 미국 연방기구가 아니다. FRB 주주들은 월가의 유력 금융회사들이다. FRB가 민간은행 소유라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연방'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양적 완화'는 무슨 나쁜 규제를 완화하는 착한 정책처럼 들리지만, 돈 찍어서 시중에 풀겠다는 말을 에둘러 포장한 것이다. 고객 예금을 보호한다는 '예금자보호법'의 경우 엄밀히 말하자면 은행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뒤집어 읽어도 무방하다.

최근 큰 경제뉴스가 슬며시 발표됐다. '베일인'(Bail-In) 제도를 이르면 연내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소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용어가 참 생경하고 어렵다. 우리말로 풀어보니 '강제손실부담원칙'이라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은행이 부실해지면 채권자들에게 손실 책임을 지우겠다는 제도다. 그런데 은행의 채권자 중 대다수는 예금주들이 아닌가.

베일인은 은행이 부실해지면 고객 예금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손실을 부담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행진으로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쥐꼬리 이자밖에 안 나오는 상황인데, 은행의 부실경영마저 예금주가 뒷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예고된 것이다. 베일인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어떻게 나타날지 가늠키 어렵다. 국민 이해를 구하기 위한 정책 설명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다가 은행에 돈 맡겨두기 겁나는 세상이 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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