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기 경북대 교수 역사교육과
성주 읍내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성주의 주산 성산 마루에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꼭 필요한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며, 성주 군민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오불관언(吾不關焉),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한 부작용, 즉 전자파와 소음 등이 인근 성주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얼마나 크게 미칠지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사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둘러싼 논란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또 다른 중요한 문제 하나가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성주인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역사 문화유적의 파괴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사드가 배치될 성산포대 자리는 성산성(星山城)이 입지한 곳이다. 성산성은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 그 구조나 성격 등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못했다. 그러나 가야문화가 꽃핀 고령이나 함안 등의 사례를 보면, 고분이 밀집한 비탈과 구릉의 정상부에는 어김없이 산성이 축조되어 있어 유사시 대피 성으로 기능했다. 성산성의 입지도 이와 꼭 같다. 무려 320여 기에 달하는 국가 지정 사적 제86호인 성산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1천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성산성은 현대에 이르러 못난 자손들로부터 한없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1963년에 국가사적 제91호로 지정된 성산성은 3년 후인 1966년 12월 돌연 지정 해제를 당했다. 1967년 이 지역에 군 특수기지가 설치되면서 산성이 연결 도로로 사용됨에 따라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사기지가 존속된 50년 동안 성산성은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접근할 수 없는 금역이 되고 말았으니, 그동안 또 어떤 파괴 행위가 자행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찮은 수모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 사드를 배치하려면 현재의 성산포대보다는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할 것이고, 부지의 확보와 기반 시설 조성 과정에서 성산성은 허무하게 소멸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성산성의 운명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성산동 고분군의 슬픈 미래도 쉽게 예측된다. 4, 5세기의 성산가야가 지척에 있었던 고령 대가야와 문화 양상을 달리하면서, 오히려 멀리 경주의 신라와 더 깊은 교류를 가졌음을 실물로 증거하여,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주 사람의 결기를 표상해 온 많은 고분들도 사드로 인해 자연히 소외되어 시나브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런 눈에 보이는 유적의 파괴와 훼손만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없애는 일이 아니란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이렇게 논란이 심한 사드가 정부 방침 그대로 성산포대에 배치된다면, 국가중요민속문화재 255호로 지정된 한개마을을 느긋하게 돌아보며 조선시대 반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으며, 머잖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444호)에서 생명의 탄생을 영원히 기리고자 했던 조선 왕실의 깊은 속내를 누가 짐작이나 해 보겠는가? 이 모두가 역사 문화유산의 파괴와 훼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뻔히 보이는 역사 문화유산의 비극적인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는 없다. 아득한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역사가 남겨준 문화유산은 결코 우리 세대의 독점물이 아니다. 더 먼 훗날까지 계승되어야 하는 영원한 인류 전체의 보물이다. 역사 문화유산은 한번 파괴되면 더 이상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입으로는 '문화 융성'을 부르짖고 문명국가를 지향한다면서 이런 야만적인 파괴 행위를 방치한다면,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죄인이 될 뿐 아니라 후손들 대대로 손가락질당하는 못난 조상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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