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학생산악연맹 中거니에신산 원정기

입력 2016-07-29 05:00:00

미답의 루트 발길 돌렸지만…젊음은 도전이다

14일 오후 캠프1을 방문한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임원진과 학생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광주일보 기자
14일 오후 캠프1을 방문한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임원진과 학생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광주일보 기자
12일 오전 대원들이 캠프2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진 채 설벽 구간을 오르고 있다. 맨 앞이 김세옥 등반대장. 원정대 제공
12일 오전 대원들이 캠프2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진 채 설벽 구간을 오르고 있다. 맨 앞이 김세옥 등반대장. 원정대 제공
16일 오전 캠프2에서 박철융(계명대) 대원이 자신이 보관하던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정대 제공
16일 오전 캠프2에서 박철융(계명대) 대원이 자신이 보관하던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정대 제공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산 학생산악연맹의 중국 쓰촨성 거니에신산(6,204m) 합동원정대가 25일 귀국하면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지난달 25일 대구에서 발대식을 가진 후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 원정대는 26일간의 원정 경험을 통해 학생 산악인으로서 도전정신과 용기, 리더십을 함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이 미래 한국 산악운동의 주역이 될 것임을 믿으며 원정기를 싣는다. 이 원정기는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소속 김세옥(영남대 기계공학부 첨단기계전공 3학년) 등반대장의 원정일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편집자

◆정상 도전 첫날, 미답의 땅의 향해

오전 2시인가 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침(?) 식사를 하라며 깨우는 목소리에 정신을 추스르려 애를 쓴다. 김인엽(부경대) 대원이다. 이 시간에 혼자 일어나 다른 대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한 모양이다. 비록 마른 누룽지를 물에 끓인 한 끼이지만 묵묵히 궂은 일을 하는 후배의 정성이 느껴진다. 고맙다.

7월 13일. 드디어 정상 공격에 나서는 날이다. 공격조는 이정현(46'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순천대 산악회OB) 총대장님과 백광윤(37'부산'부산대 산악부OB) 대장, 나, 이재훈(부경대), 박철융(계명대), 김인엽(부경대), 차호진(경일대), 최병광(순천대) 등 8명.

하지만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다. 3,900m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시작된 두통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고소(高所) 예방약을 먹기도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는지 통증은 하루 종일 계속되고 있다.

여기는 해발 5,400m 캠프2. 하얀 설원 위에 설치한 캠프2는 정상 도전을 위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휴식처이다. 그동안 베이스캠프와 캠프1, 캠프2를 오르내리며 어느 정도 고소 적응은 끝난 상태이다. 지금까지 여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2, 3일 정도가 우리 원정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며칠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루트를 찾아 정상 공격에 성공한다면 내일이나 모레 후발조도 정상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현, 김동국(50'대구경북'성광고OB), 백광윤 대장님을 비롯한 우리 대원들이 여러 차례의 정찰을 통해 어느 정도의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과 픽스 로프(fix rope) 작업은 끝낸 상태다. 하지만 정상 부근에는 어떤 장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택한 남릉 코스는 어느 외국팀도 밟아보지 못한 미답의 경지이다. 거니에신산은 그 품을 우리 대한민국 학생 산악인들에게 열어줄까.

◆3일간의 캐러밴, 베이스캠프로

그러고 보니 우리 원정대가 한국을 떠난 지도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6월 26일 대구에서 영호남 학생산악연맹 거니에신산 합동원정대 발대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사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고, 당장 달려서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선배 산악인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정상을 밟고 돌아오자고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짐을 꾸리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격려를 받으며 30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다시 집결했다. 벅찬 가슴을 안고 중국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에 도착해 다시 3일간의 캐러밴을 시작했다. 청두에서 리탕까지는 버스로, 그 이후엔 7대의 '빵차'(包車)로, 대원들의 짐과 식량, 장비를 가득가득 싣고 티베트자치구까지 이어진 318 천장공로(川藏貢路)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지만 피곤한 줄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지난 반년 이상 고락을 함께하며 훈련을 해온 동료들이 함께하는 길이었고, 바깥 풍경 또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과 산들, 고산 곳곳에서 풀을 뜯고 있는 야크 떼들,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하늘과 구름, TV 화면에서나 보았던 티베트 마을과 사람들의 이색적인 모습들….

힘든 캐러밴을 거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게 될 거니에신산 산기슭 마을 장납향에 도착한 것이 3일 오후였다. 지나간 날들이 벌써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화이트 아웃'

오늘 출발 예정 시각은 오전 3시. 식욕은 없었지만 힘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누룽지 몇 숟가락을 억지로 떠 목구멍으로 넘긴다. 무거운 몸을 움직여 주섬주섬 장비를 챙긴다. 재훈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인다. 배낭을 가지고 텐트를 나오니 이미 3시 40분. 늦었다. 속도를 빠르게 해 눈길을 밟아 나간다. 짧은 시간에 어제 해놓았던 러셀(눈을 밟아 다져 놓는 일) 지점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내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은 데다 날씨까지 나쁘다. 기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순 없지만 내 몸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것처럼 얼어붙는다. 반쯤 정신이 나가서 머릿속에는 잠 생각뿐이다.

동이 텄지만 날씨는 최악이다. 화이트 아웃(whiteout) 상태여서 날이 밝아도 지형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른 길을 찾아보지만 비슷한 길을 왔다갔다하기만 한다. 결국 컨디션이 나쁜 나와 재훈이는 먼저 하산하고 나머지 대원들만 운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캠프2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발이 푹푹 빠지고 자꾸 넘어진다. 힘들게 내려와 텐트에서 휴식을 취한다. 누워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다른 대원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운행을 계속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화이트아웃으로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

캠프1로 내려가 하루를 푹 쉬고 다시 공격조를 꾸리기로 했다. 고소와 추위에 지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캠프1로 도착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푹 쉬자고 했지만 다들 피곤했는지 각자 텐트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드는 것 같다. 나도 누워 있다 기절한 듯이 잠에 빠진다.

◆생일날 등정의 기회를 주는 걸까

7월 15일. 어제 하루를 쉬어서인지 갑자기 몸이 가뿐하다. 오전 4시 잠에서 깼는데도 개운하기 이를 데 없다. 잠자리에서 발을 차고 벌떡 일어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병광이가 만들어준 닭죽 맛이 최고다.

오늘이 사실상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다. 일정상 오늘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정현 총대장과 나, 김인엽, 장용익(목포해양대) 등 4명으로 팀을 꾸린다.

오전 5시 장비를 챙기고 캠프1을 나선다. 모든 대원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니 빠른 시간 내에 캠프2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도 좋고 오늘은 모든 것이 도와주는 것 같다. 이대로 정상 공격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하늘에서 선물로 등정할 기회를 주시는 것일까?

오전 9시 40분 캠프2에 도착, 배낭을 가볍게 하고 간식으로 배를 채운 다음 다시 출발한다. 러셀 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저번 정상 공격 때 새벽에 올라온 능선에 도착했다. 지난번엔 화이트아웃으로 구분이 안 되었지만 지금 보니 정상으로 가는 주 능선은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의 깊은 균열) 건너편에 있었다.

대장님이 저 능선까지 가기 위해선 스노우 브릿지(크레바스 사이에 눈으로 다리처럼 연결된 부분)를 통과해 커니스(능선에서 바람 때문에 눈이 처마처럼 만들어진 부분) 사이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신다. 온몸에 찌릿하고 전율이 온다. 내가 하는 것이다! 잘할 수 있겠지?

◆눈앞이 아찔, 천 길 낭떠러지가…

몸에 줄을 묶고 출발한다. 스노우 브릿지가 설마 무너지지는 않겠지? 과감하게 발을 딛는다. 문제없이 잘 넘어간다. 이제 능선을 올라가기 위해 시도한다. 갑자기 발이 푹 꺼진다. 발을 빼니 아래쪽이 비어 있는 것 같다. 크레바스다! 머리가 하얘진다. 무섭다. 푹 꺼지면 어떡하지? 심장이 뛴다. 뒤에서 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피켈을 이용해 눈을 긁어모아 다지라고 하신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시키는 대로 한다. 눈 계단을 만들어 올라선다. 같은 식으로 올라가다 보니 거의 다 올라왔다. 내가 이것을 넘어섰구나!

하지만 능선으로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는다. 눈앞, 바로 발아래가 아찔한 절벽이다. 깊이가 2천m는 될 것 같다. 내가 올라 서 있는 부서질 듯한 눈의 능선은 사람 한 명 겨우 설 수 있는 칼날 능선이었다. 대장님이 따라 올라오셨지만 암담하기는 마찬가지. 우리 실력으로 이 능선을 통과한다는 것은 바로 저승사자와 인사하는 것과 같다. 대장님이 베이스캠프와 교신한다. "칼날 능선을 만났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하산 후 다른 루트를 찾아보겠습니다."

오후 2시 우리는 발길을 되돌려 오던 길을 되짚기 시작한다. 오후 4시 캠프2에 도착하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

우리의 거니에신산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 산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생소한 대상지여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고 우기라 시기도 좋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김세옥(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영남대 기계공학부 첨단기계전공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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