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저는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알아요. 그런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뒤돌아설 많은 기회들이 있음에도 단지 그러지 않았던 거예요. 그들은 스스로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갔던 거예요."
"우리에겐 뭐가 소중하지, 샘?"
"지금의 세상에 필요한 이상이겠죠. 반드시 지켜야 할 값진 이상!"
(영화 '반지의 제왕' 프로도와 샘의 대사 중에서)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늘 길항하고 있는 내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뒤죽박죽되어 길을 막는 현재의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제법 긴 시간 길을 걸었다, '독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정책을 맡아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독서교육은 독서 이론과 방법에 능통한 독서 이론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책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 물결 안에 무늬로 자리 잡게 하고 싶었다. 책을 통해 '출제자'나 '심사위원'이나 '문제'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책의 고유한 향기를 맡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두꺼웠고 날마다 벽들과의 길항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조금 지쳤다. 길을 자주 잃고 헤매기도 한다. 적은 친구들로 길을 시작했지만 친구들이 많아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 때마다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친구들도 생겼다. 다른 장소에서 출발했지만 함께 걸어가는 친구도 생겼다. 책을 통해 우리가, 아이들이, 학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은 어둡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도 없다. 달려 나가고 싶지만 방향을 알지 못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들만 허공에 떠돌고 미처 잡지 못한 이야기들만 공간을 흘러다닌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미처 알지 못한다. 이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자신이 믿는 그것만이 최고의 대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많이 힘들다.
대서사의 시대는 끝났다. 거대담론의 시대도 끝났다. 세상은 개별성만이 생명력을 가진다고 소리친다. 거대담론이 만드는 대서사는 이제 영화 속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다. 부재(不在)하는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사라지고 '나'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너'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나'에 대한 욕망만 남았다. 그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본주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일 속삭인다.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욕망이 없는 자본주의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까. 욕망은 자본주의적 삶 자체니까.
주말을 이용해서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재미있다. 1부 '반지원정대' 178분, 2부 '두 개의 탑' 177분, 3부 '왕의 귀환' 199분으로 554분으로 9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러한 판타지 서사물을 좋아하다 보니 몇 번을 반복해서 봤는지도 알지 못하겠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냥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가? 아닐 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짧은 글에서 대답하기에는 복잡하고 벅차다. 하지만 이것만은 사실이다. 무언가가 자꾸 이 영화 안으로 나를 불렀다고. 50쪽이 넘는 '반지의 제왕' 명대사를 모으기도 했다. 하나는 대답할 수 있겠다. 대서사와 거대담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 분명 세상에는 뒤돌아설 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었기에 계속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최소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내가 여전히 이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지켜야 할 무엇 때문이라고.
이미 사라진 대서사와 거대담론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내 속에는 존재한다.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에게 '혹시 감독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나?'고 물었다. '난 정확히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8, 9살 때부터 해왔던 그 일. 지금도 별로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직도 조그만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어떤 앵글을 쓸지 궁리하는 9살짜리 아이 같은 느낌이다'라는 대답. 늘 부끄럽고 부족하기만 한 나의 유일한 자존심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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