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민주야, 소풍 가자

입력 2016-07-14 18:45:34

이숙경.
이숙경.

풋것들이 익어 가는데 더없이 고마운 계절이다. 햇살이 이룬 광야를 '민주야, 소풍 가자'라는 기획을 따라 걸었다. 소풍을 떠올리면 유년의 향수에 젖은 어른들은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작열하는 함성을 이명으로 느끼며 1960년대 열기 속을 걸었다.

내가 대구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새 천 년을 여는 2000년 9월부터이다. 그동안 2·28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며 주변인들이 열변을 토할 때마다 내 발로 그 흔적을 찾아가 느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그들과 같은 비중으로 차별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넘었을 때 2·28학생의거 기념탑 앞에 섰다. 웅대한 두 개의 탑 중 키가 큰 탑은 남학생을 상징하고, 작은 탑은 여학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무당당한 발걸음의 모습이었다. 탑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일며 고개가 수그러졌다. 내게도 당시 학생 또래의 아들이 있다. 주변이 정의롭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 때 아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 의문스러워졌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2·28기념중앙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 시를 보았다.

'설령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먹장 같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쳐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앓고 있는 하늘/ 구름장 위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기 때문'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중에서.

먹장 같은 구름 그 불의를 걷어내고 정의로 가득한 광명한 세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행간에 서 있으니 곧게 날아오는 빛살 파편이 서너 차례 가슴에 와 박혔다. 공원에서 먹는 점심은 느린 우체통에서 배달될 엽서처럼 더디게 저작되었다.

끝으로 찾아간 곳은 2·28기념관이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모략을 꾸미던 자유당은 학생들이 야당 집회에 합세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토끼잡이, 영화 관람, 임시 시험' 등을 획책하여 학교 안에 가두려 했고, 이를 알게 된 경북고, 사대부고, 대구고, 대구상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등 8개 학교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노도처럼 물결쳐 나와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는 흑백사진의 모습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리고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생각만 할 뿐 실천이 두려웠던 기성세대에게는 기폭제가 되었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영상에서 흘러나오던 해설이 계속 귓전을 울렸다. 민주로드를 걷는 소풍 날 그늘진 성장통을 치유하듯 7월의 햇살은 참으로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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