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양푸동의 누드

입력 2016-07-13 22:30:02

전시장에 들어서자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 눈을 껌벅이며 조리개를 맞췄다. 8개의 대형 삼나무 박스 한 면에서 누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젊은 나부(裸婦)들이 잿빛 모래사장 위에서 율동과 정지를 반복했다. 그녀들에게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은 없었다. 오히려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발길을 옮겨 삼나무통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았던 흑백 영상이 삼나무향을 들이마시며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카탈로그를 읽어보니 중국 작가 양푸동(楊福東)이 2년 전 노르웨이 바닷가에서 촬영한 필름이었다. 놀라운 기획 전시였다. 벌거벗은 서양 여인들이 대구미술관에서 마음껏 활보하다니!

야릇한 호기심이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들이 대담하게 앞세운 성기는 황홀경과 죄책감이 결합된 고리로 보였기 때문일까? 나체주의자들에게 알몸 연기는 유쾌한 신비극이자, 맛있는 굴욕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옷과 유행이 너무도 중요한 우리에게 나체는 불경스러운 사치이자 마지막 금기이기도 하다. 누드모델들의 미소가 마치 나를 향해 던지는 비웃음 같았다.

세상은 폭로와 은폐 사이를 왕복하며 굴러간다. 그리고 인간은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욕구와 동시에 보려는 욕망도 타고났다. 그럼에도 왜 벗은 몸에 대해서 유독 예민해지는 걸까? 사람들은 자아를 찾기 위해 혹은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아니면 비뚤어진 욕망 때문에, 술김에 남들 앞에서 발가벗기도 한다. 그래서 나체는 신성하거나 외설스럽거나 둘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양푸동은 자신의 누드 영상에 '내가 느낀 빛'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좀 아리송한 이 메시지를 나름대로 상상해보았다. 알몸으로 햇빛이나 바람 속에 서 있거나 부드러운 풀밭에 누워보면 분명 옷을 입었을 때보다 세상과 교감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금기를 위반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런 복된 경험은 없지만!

"당신 육체의 이력이 궁금하다면 발가벗고 전신 거울 앞에 서 보라. 지금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삶과 몸에 남은 흔적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공기만 입고 춤추며 하늘을 향해 뛰어보라. 이렇게 맑은 날, 어떤 옷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며 더 신성할 수 있겠는가…."

노르웨이 여인들의 알몸 향연이 그날 이후에도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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